[최송희 기자] 상대에게 믿음을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 배우가 관객에게 마음을 얻기까지는 한두 작품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 하지만 여기, 그 이름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배우가 있다. 그야말로 믿고 보는 배우라 불리는 이 남자. 그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최근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감독 윤종빈) 개봉 전 한경닷컴 w스타뉴스와 만난 하정우는 그 필모그라피만큼이나 착실하고,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추격자’ ‘범죄와의 전쟁’ ‘더 테러 라이브’ 등 그 필모그라피를 착실히 따라가다 보면, 관객들의 믿음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즉 그의 이름은 그 작품들과 동등하게 비견된다는 것이다.
“‘군도’는 생각보다 더 재밌게 봤어요. 윤종빈 감독의 의도대로 이야기한 대로 잘 나와서 만족하고 있어요. 철저한 오락영화 상업영화기 때문에 즐거움에 대한 기대감 충족되었다면 미덕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그건 모든 영화가 마찬가지니까요.”
작품에 대한 애정은 넘치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의 그림을 본다. “아쉬운 건 그 작품을 만든 이들을 지켜보며 그 다음 작품에 기대를 걸면 된다”고 말하는 그는 도치만큼이나 명료하고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는 조선 후기, 탐관오리들이 판치는 세상을 통쾌하게 뒤집는 의적들의 액션 활극으로 지배층 내부의 권력다툼 일색인 기존 사극과는 달리 백성의 시각을 담고 있다.
특히 하정우가 연기한 돌무치는 양반의 꾐에 넘어가 가족을 잃고, 군도 일행인 땡추의 추천으로 추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도치라는 새 이름을 받은 뒤 원수인 조윤(강동원)에게 복수를 꿈꾸는 인물이다.
“돌무치가 어린아이였다면 도치는 중학생 정도? 도치는 복수심과 화가 더해져,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캐릭터죠. 이유가 확실한 반항심을 갖게 되는 인물이라서 두 캐릭터에 차이를 극명하게 주려고 했죠.”
성장에 대한 키워드. 어리숙하고 순진한 돌무치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죽고 추설의 일원이 되며 성장한다. 바닥까지 비워내는 슬픔을 겪었지만 결코 뒷걸음치지 않는다. 이는 그를 연기한 하정우와도 일정부분 닮아있는 구석이 있다.
그는 과거 낙마 사고로 말을 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지만 “그것을 넘어설 만큼의 재밌는 이야기와 캐릭터”를 가진 ‘군도’의 매력에, 심리 상담까지 받으며 트라우마를 극복해냈다.
이 같은 작품에 대한 애정과 믿음은 곧 윤종빈 감독에 대한 것으로 치환되어 들리기도 한다. 그 역시 “네 작품이나 함께하며 쌓인 신뢰감이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윤종빈 감독과는 영화적 동지에요. 그 친구와의 사이가 다른 이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관계가 일을 하는데 있어 방해가 되는 건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요. 서로 상업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배려하고, 신경 쓰는 건 있지만 그걸 과시하려고 하지 않아요.”
“같이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영화를 찍자”는 짝꿍 같은 사이. 하지만 다음 작품을 함께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는 흘리듯 말했던 것처럼 그 관계를 “남들이 보는 시선만큼 부자연스럽거나 의식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화로 만났기 때문에 아무리 동문이어도 그것이 계속 지켜지고 이어져오는 것 같아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더 자주보고 신뢰를 가지고 깊은 이야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디테일하고 깊은 곳까지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상대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꿰뚫린다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의 리스크를 동반한다. 이에 “너무 잘 알아서 불편하진 않아요?”라고 물었더니, 그는 도대체 무엇이 그렇냐는 얼굴로 “꿰뚫림을 당하면 그걸 더 잘 소화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돼요”라며 씩 웃어버린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의 연출작 ‘롤러코스터’나 윤종빈 감독의 영화 속 캐릭터들이 어른거린다. 작은 말에도 일일이 반응하고, 그것을 농담으로 승화하거나 천연덕스럽게 농담이 아닌 체 한다. “윤종빈 감독과 개그 스타일이 상당히 흡사한 것 같다”고 하니, 그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상당히 잘 맞는다”고 답한다.
“평소에도 우리가 주고받은 말의 90% 이상은 농담이에요. 중딩 같은 워딩을 하는 거예요. 우리끼리 말을 만들어내고 라이터를 라이트리스라고 부르거나 하는 것들이요. (웃음) 처음에는 동원이가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척척 알아듣더라고요.”
이름만 들어도 든든한 배우들. 그 이름처럼 익숙한 ‘군도’ 배우들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친밀한 사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경영, 마동석, 조진웅, 이성민 등의 배우들은 이미 윤종빈 감독이나, 하정우와 몇 차례 호흡을 맞춰본 이력이 있었고 강동원은 4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하정우는 강동원이 ‘군도’ 팀에 함께 어울어지려 노력하는 모습이 “선배로서 너무 좋아보였다”며 그를 칭찬했다.
“자칫하면 소외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저 뿐 아니라 진웅이 형, 경영이 형도 두세 편 이상씩 함께 한 배우들이니까요. 윤 감독과도 그런 관계를 맺은 사람들인데 그걸 하나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고 주연배우로서 뭘 차지해야한다는 생각도 없이 ‘따라갈게요’라고 하니까. 방송 인터뷰 보면 스스럼없이 제일 궂은일을 도맡아 해요. 좋아하고 잘 따르니까 모든 것이 예뻐 보이죠.”
2013년 영화 ‘롤러코스터’를 연출한 것에 이어 올해 ‘허삼관 매혈기’라는 작품의 연출과 주연을 맡았다. “감독일 때 더 나이스”하다는 하정우는 ‘허삼관 매혈기’ 연출에 대해 “아줌마스러워지고 더 너그러워진다”고 말한다.
“사실 다 프로 배우들이고 베테랑이어서 얘기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선배들이고 형, 누나들이어서 포인트 적인 것만 디렉션 하죠. 다 알아서 하기 때문에 캐스팅한 것도 있고…. (웃음)”
연출을 아는 배우, 연기를 아는 연출. 어떤 것이 더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걸까? 그에게 물었더니 잠시간의 고민 끝에 “다 돼죠”라고 답변한다.
“연출을 하고 나서 더 좋아진 건 이런 거예요. 예전엔 감독님이 모호한 디렉션을 주면 ‘왜 이렇게 모호하게 얘기하지?’라고 했다면, 이제는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는 거예요. 이 신에서 제가 어떤 기능을 해야할 것인지도 명확해졌고요. 배우로서 장편 30개를 해도 몰랐던 것이 ‘롤러코스터’ 연출을 하면서 단 번에 알게 됐어요.”
작품을 더욱 ‘잘’ 들여다 볼 줄 알게 된 배우. 하정우의 걸음걸이는 정말이지 거침없다. 앞을 향해 나아가는 그 당당한 걸음걸이, 그가 남긴 발자국은 곧 관객들에게 기대와 믿음을 선물한다.
“때로는 배우가 리드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의 기호 같은 것에 있어서요. ‘롤러코스터’도 그 지점의 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낯선 장르의 코미디, 그런 것들도 받아들여질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주연배우든 감독이든 예술가든. 끌려가지 않고 리드하고 발자국 만들고 제시하는 게 예술가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문화, 기호가 탄생하고 넓어지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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