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걱정되는 '임금인상' 부양책

입력 2014-07-31 20:40   수정 2014-08-01 04:16

윤기설 < 좋은일터연구소장·노동전문기자·경제博 upyks@hankyung.com >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이 내놓은 경기부양책 가운데 기업들의 임금인상을 통해 내수를 진작하겠다는 것은 일본 아베노믹스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아마도 임금인상 카드를 내건 아베의 경기부양책이 그럴듯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환경과 체질이 우리와는 전혀 달라 그대로 갖다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일본은 몇 년째 물가상승률이 제자리다. 이 때문인지 대기업들은 이익을 많이 내도 웬만해선 임금을 올리지 않는다. 상생의 노사관계를 유지하는 노조 역시 회사의 임금동결을 적극 지지한다.

아베 방식 우리 몸엔 안 맞아

도요타자동차가 지난해까지 5년간 임금을 동결하다 정부 독려에 못이겨 6년 만인 올해 처음 임금을 인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것도 0.8%인 월 2700엔(약 2만8000원) 올리는 데 그쳤다. 이익이 적어서 그런 게 아니다. 도요타는 2014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에 비해 5배 늘어난 1조2200억엔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 닛산 혼다자동차 등 다른 대기업들도 몇 년간 임금을 동결하다가 올해 1% 안팎의 임금을 올렸다. 일본 기업들이 얼마나 임금인상에 인색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도요타가 2003년 이후 4년 연속 사상 최대 수익을 냈을 때도 노조가 앞장서 임금동결에 나선 적이 있다. 2007년 일본 렌고(일본노총)를 방문했을 때 도요타 노조의 행태가 궁금해 한 간부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조가 임금동결에 나서는 이유가 뭐냐”고. 그런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기업에 비해 임금이 많기 때문”이란 것이다. 회사의 경쟁력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염치 배려 공동체를 고려한 사회적 책무도 노조의 중요한 자산이었다. 이러니 임금인상을 독려해도 큰 부작용은 없을 것이다.

노조 요구 더욱 거세질 것

우리는 어떤가. 매년 노사 협상철만 되면 일터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과다한 복지와 임금인상에 집착한다. 현대자동차 노사 협상을 살펴보자. 노조는 매년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내놓으라고 으름장이다. 지난해의 경우 각종 명목으로 수천만원 상당을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10차례에 걸쳐 부분파업을 벌였다. 회사는 1조원이 넘는 생산차질을 빚었다. 회사를 압박한 노조는 결국 기본급 9만7000원(기본급 대비 5.14%, 호봉승급분 포함), 성과급 350%+50만원 등 1인당 평균 2879만원을 챙겼다. 도요타 인상액의 몇 배 되는 임금이다. 통상임금 문제로 시끄러운 올해도 순이익 30% 성과급 지급을 비롯 상여금과 각종 수당의 통상임금 포함 등을 요구한 상태다. 금속노조 금융노조 등은 고율의 임금인상 지침을 산하 노조에 내려보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임금인상정책은 대기업 노조의 과도한 요구에 명분까지 얹어주는 꼴이다. 투쟁을 통해 큰 몫을 챙기려는 대기업 노조의 전투적 실리주의는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근로자와의 임금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만들며 계급 간 위화감을 심화시킨다. 임금은 한 번 오르면 다시 내려가기 쉽지 않다. 노조 권력이 세고 노사 관계가 대립적인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는 것은 좋지만 그 길이 잘못됐다는 것을 안다면 하루빨리 제대로 된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윤기설 < 좋은일터연구소장·노동전문기자·경제博 upyks@hankyu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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