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남북 탁구여제 현정화-이분희의 엇갈린 운명

입력 2014-10-02 19:42  


(전예진 정치부 기자) “‘연락할게’도 안돼고 ‘편지할게’도 안돼고…. 이런 이별이 어딨어.”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대회. 남북 단일팀으로 우승을 거머쥔 현정화(하지원)는 이분희(배두나)와 작별하면서 이렇게 울먹였다.

그후로 23년. 두 탁구여제의 만남은 올해도 빗나갔다.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이 지난 1일 음주운전 사고로 물의를 일으킨데 이어 2일 이분희 북한 조선장애인체육협회 서기장의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나이, 성격, 탁구선수 출신의 배우자까지 공통점이 많은 두 사람은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교통사고에 휘말려 안타까움을 더했다.

현 감독은 만취한 채 사고를 내 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장에서 사임했다. 한국의 탁구 신화를 만들어온 현 감독으로서는 불명예스러운 퇴진이 아닐 수 없다. 이 서기장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오는 18일 개막하는 인천아시안 장애인 게임 참가가 어렵게 됐다. 23년 만의 재회 가능성은 이렇게 무산됐다.

두 사람은 그동안 서너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히 불발됐다. 북한의 통제에다 서로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국제대회에 참가한 남북 선수들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연락을 이어왔던 것도 2000년 들어 끊겨버렸다. 현 감독은 이 서기장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북한 선수들을 통해 전달했지만 편지를 받았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다.

2012년 영화 ‘코리아’가 개봉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시 주목을 받았다. 현 감독은 영화 개봉 당시 “이쁜이 언니라고 불렀던 분희 언니가 항상 내 가슴 속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며 기뻐했다.

현 감독은 영화 개봉 후 베이징에서 전지훈련 중이던 이 서기장과의 만남을 추진했다. 그러나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후 정세가 혼란한 상황이어서 정부는 만남을 승인해주지 않았다.

현 감독은 이후 한 인터뷰에서 “지바 대회에서 금메달이 확정됐을 때 벤치에서 달려나와 이분희 언니와 부둥켜안고 울었고 라커룸에서 부둥켜안고 많은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현 감독이 우승한 날 밤 몰래 이분희의 숙소로 찾아가 네 시간 넘게 수다를 떨고 서로의 이름을 새긴 금반지를 이분희 언니 손가락에 끼워준 일화도 유명하다.

영화 ‘코리아’ 제작사와 현 감독은 영화 개봉 후 이 서기장에게 영화 속 소품으로 사용했던 ‘정화&분희’가 새겨진 금반지를 전하려고 했으나 거절했다고 한다. 승부욕이 강하고 자존심이 센 이 서기장의 성격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서기장은 뇌성마비 장애 아들을 둔 엄마로서 북한 장애인 탁구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오는 22일 영국에서 열리는 ‘북한 장애 청소년의 미래’라는 제목의 세미나에 참석하고 북한의 장애 어린이와 청소년 11명과 영국 의회,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당초 인천아시안 장애인 게임을 포기하더라도 영국행을 감행할 정도로 북한의 장애인 인권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인권과 자유가 억압되는 북한에서 이 서기장의 당찬 행보가 존경스러운 이유다.

병상의 이 서기장이 현 감독의 음주 사고 소식을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영화 속에서 명대사처럼 “현정화는 현정화답게 굴라우”라고 따끔하게 혼내지 않았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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