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프런티어] "노벨상보다 기초과학 수준 높이는 게 중요"

입력 2014-10-05 22:18  

한국인 첫 노벨화학상 후보로 꼽힌 유룡 IBS 단장

톰슨로이터, 노벨상 후보로 선정
다공성 물질 연구 20년 외길
"한우물 파며 성과낸 건 행운"



[ 임근호 기자 ]
세계 3대 통신사인 톰슨로이터가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 후보로 꼽은 유룡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연구단장의 목소리에는 ‘흥분’의 흔적이 없었다.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환경에 대한 차분한 설명만 이어졌다. 그는 “노벨상 수상에 너무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며 “한국에서 아직 노벨과학상이 나오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지면 누군가는 자연스레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톰슨로이터는 2002년부터 노벨상 수상 후보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인 과학자가 이름을 올린 것은 유 단장이 처음이다. 그동안 톰슨로이터가 꼽은 과학분야 156명의 후보 중 25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후보로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유 단장은 ‘기능성 메조(meso·중간)다공성(多孔性) 물질’ 설계에 관한 업적으로 찰스 크레스기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 최고기술책임자(CTO), 게일런 스터키 미국 샌타바버라대 교수와 함께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이 유력한 세 그룹 중 하나로 꼽혔다.

‘메조다공성 물질’은 2~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크기로 구멍이 뚫려 있는 물질을 말한다. 석유화학 공정 등에 쓰이는 촉매제로 활용된다. 그는 제올라이트라는 광물로 메조다공성 물질을 만들어 내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1년 사이언스지는 “오래된 학문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찬사를 보냈다. 오래전에 발견돼 거의 연구가 끝났다고 생각한 제올라이트를 활용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모래의 주성분인 실리카와 알루미늄으로 이뤄진 광물인 제올라이트도 0.5~2㎚ 크기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다공성물질이다. 그는 “건축물을 지을 때 벽을 제올라이트, 집은 메조다공성 물질이라고 생각하면 쉽다”고 비유했다. 집 자체도 여러 개의 방으로 구성돼 구멍이 뚫려있는 구조지만 벽에도 작은 구멍이 나 있기 때문에 촉매제의 기능이 훨씬 뛰어나다는 얘기다. 유 단장은 이 연구로 제올라이트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브렉상을 2010년 수상했다. 그의 연구 성과는 지금까지 1만9800번 인용됐다.

유 단장은 자신이 올해 노벨화학상을 받을 확률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톰슨 로이터가 과거에 거론한 후보 중에서도 올해 수상자가 나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언젠가 노벨화학상을 받아도 담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벨상 수상자 한 명 나왔다고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강조했다. 대만에서는 1986년에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미국 시민권자인 리위안저 박사다. 1994년 미국시민권을 반납하고 대만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현재의 대만 과학기술 수준이 한국보다 높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국제사회에 이바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노벨상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했다.

1977년 서울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고 KAIST와 스탠퍼드대 화학과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딴 유 단장은 20년 넘게 다공성 물질 연구라는 한우물만 파왔다. 그는 “금광을 다 파면 더 이상 금이 안 나오는 것처럼 과학 연구도 한 주제에만 매달리면 더 이상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계속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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