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리포트] "세금 탈루 막자" vs "그래도 구멍은 있다"…조세회피 전쟁 勝者는

입력 2014-10-19 21:27   수정 2014-11-10 09:33

美·EU "꼼수 손보겠다" 해당기업 조사 · 고강도 대책 마련
기업들 "불법 없었다" 각국의 '세율인하 경쟁' 활용은 정당
전문가들 "전세계 세법 통일되지 않는 한 방지 불가능"



[ 김순신 기자 ]
지난 14일 룩셈부르크에서 28개 유럽연합(EU) 회원국 재무장관들이 마라톤 협상에 들어갔다. 세계 조세 당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룩셈부르크와 오스트리아는 은행 비밀주의를 과감히 포기했고 아일랜드는 다국적 기업들이 이용해온 조세 회피의 경로 차단에 나섰다.

세원 잠식을 막으려는 유럽 연합전선이 등장하자 다국적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각국의 세법상 맹점을 이용해 세금을 회피하던 다국적 기업과 적법한 법인세를 물리겠다는 당국 사이의 ‘조세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꼼수 손보기에 나선 국제사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재정 부족에 시달리던 각국 정부는 조세회피 문제를 해결하려고 팔을 걷어붙였다. 관행으로 여겨지던 역외 조세회피를 손봐 경기침체로 부족해진 세수를 채우겠다는 것이다.

우선 국제사회는 기업들이 활용해온 각종 세금 회피 수단을 더는 못 쓰게 만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2년부터 기업들의 조세 회피를 ‘세원침식과 이익이전(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이라 부르며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OECD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디지털 경제 △국제 조세조약 남용 방지 △기업과세 일관성 확보 △투명성 확보 등 주제를 잡고 내년까지 조세 회피 방지책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올 들어 EU 기업을 인수합병한 뒤 법인 본사를 유럽으로 옮겨(일명 기업자리바꿈·corporate inversion) 법인세를 줄이는 미국기업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조세회피를 위해 법인을 옮기는 기업들은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것”이라며 “이런 기업 탈영병을 막기 위해 모든 조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기존의 규정을 정비해 ‘자리바꿈’을 통한 기업들의 이익을 줄이는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EU는 기업들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해 경쟁법의 칼날을 들이댔다. 회원국들을 압박해 기존의 조세 회피 제도를 고치게 하는 한편 기업들과 국가들이 맺는 조세특례 협정에 대해서도 조사를 시작했다. EU의 독점 규제 당국인 EU 집행위원회는 6월 애플과 아일랜드 정부 사이에 법인세율에 관한 이면계약이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집행위원회는 애플이 이면계약을 통해 2%대의 법인세만 납부해 높은 법인세를 내고 있는 경쟁사들과 불공정한 경쟁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영국에서 시행 중인 지식재산권으로 벌어들인 이익에 대해 저율의 법인세를 부과하는 ‘특허 박스’ 제도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기업들 “어떤 불법도 없었다”

다국적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세율인하 경쟁’에 나섰던 일부 국가를 활용했을 뿐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이 유리한 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상원 청문회에서 “법인세에 대해 어떤 불법도 없었다”며 “세금은 마지막 한 푼까지 모두 냈다”고 주장했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은 낮은 법인세와 각종 세법상 특례 제도를 통해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해왔다. 아일랜드의 법인세는 과세표준의 12.5%로 미국(최대 39.2%)보다 크게 낮다. 제조업 기반이 없는 유럽의 소국들이 법인 유치와 관련된 회계나 법무 등의 산업으로 경제성장을 꾀한 것이다. 회계 업계 관계자는 “아일랜드에서 조세 회피를 위한 페이퍼컴퍼니 하나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최소 5만달러에 달할 것”이라며 “이런 기업이 1000개만 있어도 5000만달러의 새로운 시장이 형성된다”고 말했다. 아일랜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유럽 재정위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연평균 6%대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산업 고도화 역시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를 쉽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1990년대 후반부터 구글 애플 화이자 같은 정보기술(IT)·제약 기업들이 다국적 기업에 합류했다. 제조 기반이 필요 없던 이 기업들의 조세 회피에는 지식재산권이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애플 구글 등은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에 해외사업 총괄 법인을 세워 지식재산권 수입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이익을 집중시킨 뒤 해당 법인의 근거지를 조세회피처에 두는 방식을 선택했다. 아일랜드 세법상 두 개의 법인이 필요해 ‘더블 아이리시’라고 불리는 이 방법을 활용해 기업들은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이익에 대해 법인세를 피할 수 있었다. 다수의 국가에서 사업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세금 낼 국가를 고르는 ‘세금 쇼핑’을 한 것이다.

정부가 다국적 기업에 이길 가능성 낮아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의 세수 확대 노력이 성공할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다. 세계 세법이 통일되지 않는 한 기업들은 규제가 없는 나라로 법인을 옮겨 조세 회피를 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더블아이리시 폐지가 발표되자 구글은 “국가는 제도를 만들고 기업은 그에 따를 뿐”이라며 “유럽지역에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의 IT업계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기업들은 아일랜드가 아닌 버뮤다로 직접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나 스컬리 KPMG 조세담당 임원은 “아일랜드 정부의 발표에 대해 이미 대비를 끝냈다”고 주장했다. 안종석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백개의 조세회피 방법이 있는 현재 상황에서 다자간 국제적 공조가 당장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들이 종전처럼 대놓고 조세 회피를 하기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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