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배관공

입력 2014-11-14 20:52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40년 전인 1974년 5월 그리스 아테네의 한 고물시장에서 남루한 차림의 땜장이가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놀랍게도 500만달러(약 55억원)의 유산을 남겼다. 평생 볼품없던 그가 도심의 호화주택과 상가, 땅, 주식 등 엄청난 재산을 가졌다는 게 알려지면서 유산을 둘러싼 친지들의 싸움까지 덩달아 토픽으로 떠올랐다.

한때는 동서양 가릴 것 없이 땜장이나 미장이, 석수장이 등 험한 일 하는 기술자들을 ‘장이’라는 이름으로 싸잡아 천대했다. 1970~1980년대까지 양은냄비 때우거나 하수관 연결하는 아저씨들이 얼추 그런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직업의 위상도 세상 흐름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그중 배관공의 변화는 아주 극적이다. 벌써 10년 전부터 호주에서는 ‘연봉 10만달러 배관공 구함’이라는 광고가 실렸다. 용접공과 전기·보일러 기술자의 몸값도 크게 올라 의사나 건축 설계사 수준을 넘었다고 했다.

엊그제는 억만장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명문대 진학보다 배관공이 더 낫다”고 해서 눈길을 끌었다. 하버드대에 진학하면 매년 5만~6만달러(약 5500만~6600만원)를 지급해야 하지만 배관공으로 일하면 그 돈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꼽은 배관공의 매력은 ‘기술 경쟁력에 임의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12년 통계만 봐도 뉴욕 배관공 연봉은 기본급에 초과근무 수당을 더해 20만달러(약 2억2000만원)가 넘었다.

사회의 인식도 좋은 편이다. 미국 인기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 나오는 여주인공과 동네 아줌마들은 새로 이사온 배관공에게 홀딱 반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게임 캐릭터 슈퍼마리오도 멜빵 달린 배관공 옷을 입고 멍키스패너나 망치로 악당을 물리친다. 최근 미국 직업교육기관 조사 결과 ‘취업을 위해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전공’ 1위도 배관공이다. 법학이나 정보기술(IT) 분야를 제친 것이어서 더욱 놀랍다.

호주에서도 결혼 적령기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 1위가 배관공으로 조사됐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하고 연봉은 1억원이 넘으니 그럴 수밖에. 앞으로 로봇이나 무인기계가 하지 못하는 직업이 높은 연봉을 받을 것은 불보듯 뻔하다. 미국에서 셰일가스 붐을 타고 배관공 연봉이 더 가파르게 오르고, 캐나다의 이민 직종 중 배관공과 용접공이 최상위권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원전 수리 기술자들이 퇴직 후 최고 몸값으로 스카우트되고 있다. 이처럼 겉모습보다 내재가치가 높은 직업을 일컬어 ‘실속직업’이라고 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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