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인트] 대주주 경영권 침해하는 '모범규준'은 간섭주의 전형

입력 2014-11-24 21:00   수정 2014-11-25 05:23

금융委 행정지도로 나온 모범규준
대기업 금융사의 인사권 제약규제
이제 가부장적인 간섭은 버려야

민세진 < 동국대 교수·경제학 sejinmin@dongguk.edu >



‘퍼터널리즘(Paternalism)’이란 말이 있다. 라틴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pater’에서 나온 이 말은 간섭주의, 가부장주의, 온정주의 등으로 해석된다. 뭐라 부르건 그 뜻은 ‘아버지가 자식 걱정해 그러하듯이 사사건건 간섭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정부가 국민에 가부장적이라고 평가한 바 있는데,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하 모범규준)을 보고 가부장주의의 끝을 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범규준의 취지는 훌륭하다. 금융회사는 국민의 재산을 바탕으로 경영되기 때문에 견고한 지배구조가 중요하고, 지배구조의 실패는 금융시스템에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정부가 제시한 ‘큰 틀의 공통규범’을 따르라는 것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란 무엇인가. 기업지배구조는 누가, 어떻게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영상 결정을 내리는가에 대한 체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일상적 의사 결정은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이 하고, 경영진은 이사회가 감독한다. 그런데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들은 주주총회에서 선임되므로 결국 기업의 목표는 주주의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업지배구조는 경영진이 주주의 이익을 위한 의사 결정을 하도록 만들어진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금융회사는 지배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이는 결국 주주가 경영진 감독을 제대로 못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은행법에는 한 사람이나 한 회사가 은행 지분을 압도적으로 갖지 못하도록 돼있다. 그 결과 모두가 주인이면 아무도 주인이 아니듯이, 은행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나설 만한 주주가 없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은행의 중요성 때문에 정부가 은행 일에 과도한 책임감을 갖게 된 것이다. 여타 금융업에는 은행 같은 법 규정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대주주가 있지만, 이 경우에는 금융회사 경영에 대주주 이익만 우선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어 왔다.

따라서 정부가 금융회사들의 지배구조를 불안하게 여기는 것은 일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온정주의가 간섭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정부 일이 언제나 그렇듯이 문제는 ‘디테일’이다. 모범규준은 ‘큰 틀의 공통규범’이라고 하기에는 시쳇말로 디테일이 살아 있다. 그런데 그 디테일이 엉뚱한 면까지 있다.

이사회에 포함된 회사 외부 인사인 사외이사의 전문성이 걱정된다면서도 은행 사외이사의 첫 임기를 2년에서 1년으로 줄이기로 했다든지, ‘촘촘한 최고경영자 승계계획’을 마련하라며 최고경영자 외의 임원까지 대상으로 하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두라고 하는 식이다. 게다가 회사의 임원후보를 추천하는 데 반드시 사외이사를 포함하라니, 금융위원회 고위직 후보를 외부인을 포함한 조직에서 정하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은행과 다른 업권 간에 지배구조 문제가 다른데도 모범규준을 공통 적용한다는 점이다. 금융회사들의 ‘규제차익’ 추구를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규제차익’은 이 영역과 저 영역의 규제 수준이 다를 때 발생할 수 있는데, 예컨대 은행보다 약한 규제를 적용받는 업권의 회사가 사실상 은행의 업무를 영위해 규제를 회피하면서 얻는 이익을 말한다. 하지만 지배구조로 규제차익을 얻는 경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모범규준은 금융위원회가 수년 전부터 추진해 오던 관련 입법이 늦어지자 법이 아닌 행정지도로 발표된 것이다. 행정지도라지만 금융회사들로선 법처럼 따를 것이다. ‘지배구조에 정답이 없기 때문에’ 만든 규준이라는데, 정말 그런 신축성 있는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

민세진 < 동국대 교수·경제학 sejinmin@dongguk.edu >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