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모 기자 ]
“쿠바 경제가 나빠진 게 미국의 엠바고(금수조치) 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지난달 30일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만난 쿠바 정부의 전직 관료 A씨는 미국과의 국교정상화가 쿠바에 미칠 영향을 묻는 기자 질문에 대뜸 이렇게 되물었다. 그는 “쿠바 정부, 그리고 많은 쿠바인들이 쿠바 경제가 나빠진 게 미국 엠바고 탓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쿠바 정부는 몇 년 전부터 외국인에게 투자를 개방하면서 세금 감면 등 각종 유인책을 제시했다. 유럽과 남미의 수백여개 기업들이 현지법인이나 사무소를 두고 있다. 아바나의 미라마르무역센터 빌딩에만 100여개 외국 기업이 입주해 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는 여전히 부진하다. 익명을 요구한 유럽계 기업 관계자는 “투자가 금지된 미국 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유럽 기업들이 왜 쿠바에 투자를 하지 않겠느냐”며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0년 이상 사회주의 체제가 지속되면서 곳곳에 관료주의 병폐가 곪아 터져 있다”고 했다.
외국 기업이 쿠바 현지 직원을 채용하려면 대외무역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보통 1~2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기업은 쿠바 정부에 종업원 1인당 월 1000~3000달러를 지급하고 쿠바 정부가 그 직원에게 매달 35~50달러씩 월급을 주는 구조다. 외국 기업에서 일하지만 신분은 공무원이라는 얘기다. 기업들은 종업원들에게 인센티브 차원에서 별도의 ‘보너스’를 주고 있다.
쿠바에서 수출계약을 따내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쿠바는 모든 수입을 정부가 맡는다. 공무원들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새 수입처를 선정할 인센티브가 없다. 일이 느리게 진행될 뿐 아니라 ‘급행료’도 필요하다고 한다. 국영기업들의 비효율과 부패 문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휘발유·시가 등을 불법유통하는 암시장은 날로 커지고 있다. A씨는 미국이 엠바고를 해제하면 쿠바 국민들이 그때서야 진실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쿠바가 어려워진 것은 미국의 제재 때문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가 근본 원인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장진모 아바나 특파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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