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로 변한 수도권 규제] "가족은 두 배로 늘었는데 계속 단칸방에 살라는게 수도권 규제"

입력 2015-01-13 20:39  

인터뷰 조병돈 이천시장

재직 10년간 사라진 일자리 5000개
신·증축 요구 못들어주는 심정 기가 막혀

이천 떠난 기업들, 인접한 진천·음성으로
경기도만 넘어가면 마술처럼 규제 사라져



[ 김재후 기자 ]
“아들딸을 하나씩 낳아 가족이 두 배로 늘었는데, 신혼 때 살던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살 수 있겠습니까. 기가 막히지 않겠습니까. 수도권 규제가 바로 그런 규제입니다.”

조병돈 이천시장(66)은 지난 9일 이천시청 시장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수도권 규제로 공장을 늘리지 못해 이천의 많은 기업이 해외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 경제, 나아가 국가경제가 살려면 기업들의 투자가 늘고 양질의 인력이 몰려야 하는데 이천 경제만 역주행하고 있다는 탄식이다.

2006년 민선 4기로 이천시장에 당선된 뒤 내리 3선을 한 그는 “이천은 거미줄 같은 수도권 규제에 눌려 도시로서 자연스러운 성장도 못하고 있다”며 “지난 10년 동안 성장에 목말라하는 기업인들의 한숨소리를 들을 때마다 깊은 회의감에 빠지곤 했다”고 토로했다.

이천시는 도시 전체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자연보전권역으로 지정돼 있다. 공장 증설과 신설, 대학 유치가 사실상 금지된다. 조 시장은 이를 “최강·최악의 규제”라고 규정했다. 이천시 인구는 1982년 11만3010명에서 20년 뒤인 2002년엔 19만641명으로 매년 3697명꼴로 증가했지만, 지역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2002년 이후엔 연평균 1553명으로 인구 성장세가 급격히 꺾였다. 이 정도면 인구의 자연 증가분에 가깝다.

조 시장은 재직 기간 이천을 떠나간 알토란 같은 기업을 일일이 거명하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스태칩팩코리아 LG실트론 현대아이비티 팬택앤큐리텔 CJ 현대오토넷 핸켈테크놀로지스 등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면서 이천시의 일자리도 5000개 가까이 사라졌다고 했다.

“지금 말한 기업은 종업원 100인 이상의 회사들입니다. 소규모 회사까지 포함하면 수백개가 될 겁니다. 지역 내 기업들이 성장하고 사업을 성공시키면 즐거워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저는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습니다. 또 떠나는 것 아닌가 싶어서요.”

조 시장은 국토 균형발전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고도성장 과정에서 지역 간 성장 불균형이 나타난 것이 사실인 만큼 이를 바로잡는 노력은 수긍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수도권 규제가 33년째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규제 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여건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시장은 우선 수도권 규제의 명분인 ‘인구집중 억제’에 대해 정부가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써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그동안 수도권 신도시를 1기, 2기로 나눠 만들었는데, 이때 비수도권 인구가 대거 수도권으로 유입됐다”며 “정부가 스스로 인구를 불러들이는 정책을 쓰면서 기업들은 나가라고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꼬집었다.

두 번째로는 수도권 규제의 부작용이 많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10년간 이천을 떠난 대부분의 기업이 간 곳은 시(市) 경계가 맞닿은 충북 진천과 음성”이라며 “자연보전권역 내 규제의 큰 틀은 한강 상수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인데, 정작 이 도시들은 이천보다 더 상류에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한강 상수원을 보전해야 한다는 명분이라면 더 규제해야 하는데 기이하게도 경기도만 넘어가면 이런 규제가 곧장 사라져버린다는 것.

조 시장은 “이천은 이제 공장은 떠나고 물류창고만 몰리는 도시”라며 한숨을 쉬었다. 물류창고는 수도권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데다 물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이천은 향후 땅값 상승 가능성도 높아 여기저기 물류창고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천시에 자리한 물류창고는 73개에 달한다. 조 시장은 “이대로 가면 이천은 일자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창고만 껴안고 있는 유령도시가 될까봐 두렵습니다.”

그래도 한강 상수원은 보호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봤다. 조 시장은 기자에게 팔당상수원 일대를 한번 둘러보라고 말했다. 규모가 워낙 작아 규제를 받지 않는 4000여개의 공장이 골짜기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이들에 대한 사후관리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 “차라리 대규모 산업단지를 만들면 폐수관리가 더 쉽고 난개발도 막을 수 있을 텐데…. 언제 그런 날이 올는지 모르겠습니다.”

■ 3549억원

2004년부터 작년까지 수도권 기업이 충청권과 강원도로 이전하면서 받은 국가보조금 지원액. 같은 기간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광역자치단체가 받은 국가보조금 총 지원액(5170억원)의 68.7%에 달한다.

이천=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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