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기억이라는 노트 위에 써내려간 글

입력 2015-01-15 22:01  

기억의 집

토니 주트 지음 / 배현 옮김 / 열린책들 / 240쪽 / 1만3000원



[ 송태형 기자 ] 토니 주트(1948~2010). ‘전후 유럽에 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포스트워 1945~2005》를 비롯해 《재평가: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등 뛰어난 저술을 남긴 역사학자다.

그는 2008년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목과 머리를 빼고는 어떤 근육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지만 그의 정신만큼은 변함없이 기민했다. 불면의 고통이 찾아오는 밤에 자신의 기억을 샅샅이 훑으며 머릿속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밤새 떠올리고 다듬은 문장들은 초기 모더니즘 사상가들의 기억술을 활용해 지은 ‘메모리 샬레’, 즉 기억의 집에 차곡차곡 채웠다. 다음날 조력자가 그 문장들을 받아 적었다.

그의 유고작 《기억의 집》은 불굴의 정신을 소유한 위대한 역사학자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기록이다. 자전적인 에세이를 넘어 냉철한 이성과 문학적 감성을 지닌 당대 지성의 거울에 비친 시대의 초상이라고 할 만하다.

각각의 글들은 저자가 살아온 인생의 단편을 다룬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런던 거리부터 21세기 뉴욕 주방을 오가며 반추하는 경험과 추억들은 사회와 세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68혁명’에 대한 기억은 유럽의 성 정치학과 자신이 속한 혁명 세대에 대한 냉정한 평가로, 케임브리지대 기숙사 청소부에 대한 기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성찰로 나아간다.

동유럽계 유대인으로서 10대 시절 이스라엘 공동체 키부츠에서 보낸 경험은 그의 사상과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편협하고 답답한 지역주의와 인종적 유아론을 체험한 그는 공산주의와 같은 정치적 유토피아주의나 시온주의와 결별한다. 대부분의 케임브리지 동기와는 달리 ‘68혁명’을 주도한 신좌파의 열정에 휩쓸리지 않고, 사민주의자의 길을 걷는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찾았던 스위스 샬레(스위스풍 산장)와 작은 기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글을 맺는다. “우리는 인생을 어디서 시작할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인생을 어디서 마칠지는 결정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고 싶은지 잘 안다. 그 작은 기차 안에서 나는 그 어디로도 가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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