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 리포트] "어서 오시게, 패리티"…유로화 폭락에도 자신감 넘치는 ECB

입력 2015-03-15 21:18  

환율 덕에 위기 벗어나는 유로존

ECB 돈 풀기에 美 금리인상 임박…환율 1.04달러…1년새 25% '뚝'
통화가치 하락으로 수출경쟁력 상승…올해 유로존 성장률 1.5%로 상향
'유로화 폭락=유로존 위기' 공식 깨져…당분간 약세…우크라 사태도 변수



[ 김은정 기자 ]
유로화 가치가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위기가 한창이던 때보다 하락세가 더 가파르다. 사미어 사마나 웰스파고 투자전략가는 “패리티(parity·1유로=1달러)는 가능성이 아닌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과거 유로화 가치가 폭락할 때마다 등장하던 ‘유로화 위기설’이나 ‘유로존 붕괴설’이 들리지 않는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던 유로존 재정위기 때와는 딴판이다. ECB는 내심 최근 유로화 가치 폭락을 즐기는 분위기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긍정적인 균형을 의미하는 패리티가 눈앞에 다가와 행복하다”고까지 했다. 유로화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재정위기 때보다 가파른 유로화 하락세

지난 13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유로화 가치는 1.04달러까지 떨어졌다. 유로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13%가량 하락했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2011년 3분기의 하락 폭(8.3%)보다 크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오는 9월이면 ‘패리티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로화는 달러화보다 비싼 통화’라는 통념이 깨지는 것이다.

1999년 1월 1.17달러로 첫 거래를 시작한 유로화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던 것은 2000년 10월의 0.82달러였다. 도입 초기 혼란 속에 유로화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시장 우려가 컸던 탓이다. 그러나 각국이 자국 통화를 폐지하고 유로화를 전적으로 도입한 2002년 1월 이후 유로화는 시장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2002년 말 1달러를 넘어선 유로화 가치는 13년간 줄곧 1달러를 웃돌았다.

지금까지 유로화 가치 폭락은 ‘유로존의 위기’를 의미했다. 유로존에 크고 작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유로화 붕괴론이 나왔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유로존이라는 후광 효과에 힘입어 해외 투자자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에 앞다퉈 투자했다. 해외 투자금이 물밀 듯 밀려오면서 남유럽 경제에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해외 투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 지역의 자산 가격은 폭락하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2008년 7월 1.60달러로 정점에 달했던 유로화 가치는 유로존 재정위기를 거치며 1.20달러까지 주저앉았다. “유로화 탄생은 역사적 재앙”(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경제 구조와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제각각인 국가가 같은 통화를 사용하면서 민첩한 위기 극복이 어려웠다는 이유에서였다.

‘유로화 폭락=유로존 위기’ 공식 깬 ECB

최근의 유로화 가치 급락은 재정위기 때와 현상은 같지만 ECB가 의도적으로 유로화 하락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CB는 9일 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시행했다. 경기를 부양하고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국채 매입을 통해 시중에 대거 돈을 푸는 것이다. ECB는 각국 중앙은행을 통해 지난주에만 98억유로(약 11조7500억원)어치 유로존 국채를 사들였다. ECB는 내년 9월까지 1조1000억유로 규모의 양적 완화를 계속한다. ECB의 양적 완화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맞물려 유로화 가치는 지난 1년간 25% 떨어졌다.

유로화 가치 하락은 유로존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유로존의 작년 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3% 증가했다. 전문가들의 예상치와 전 분기 증가율 0.2%를 넘어섰다. 데이비드 후세이 매뉴라이프애셋매니지먼트 투자전략가는 “유로화 가치 하락이 수출 주도형 유로존 경제에 선물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로화 가치가 10% 떨어지면 유로존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33%포인트 높아진다. ECB는 최근 유로존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작년 말 발표한 1%에서 1.5%로 상향 조정했다.

“당분간 하락세 지속할 것”

유로화 가치는 당분간 계속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씨티·바클레이즈 등 글로벌 IB는 경쟁적으로 유로화 가치 전망치를 련煞?있다. 도이치뱅크는 올 연말께 패리티가 나타나고 2017년에는 0.85달러까지 유로화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년까지 ECB의 양적 완화가 이어지는 데다 연내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예정돼 있어 달러화 강세에 따른 상대적 유로화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각종 경제지표를 통해 유로존의 경기 회복이 뚜렷해지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유로화 가치가 상승 반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유럽팀장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서방 국가 간 갈등이 해결되는 것도 유로존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유로화 가치를 상승 반전시킬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 급락하던 유로화 가치가 상승 반전했을 땐 미국 경제의 영향이 컸다. 미국이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면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글로벌 자금이 줄었고, 미 달러화 가치도 떨어졌다. 이 덕분에 유로화 가치는 상승 국면으로 돌아섰다. 유로존 재정위기 땐 ECB가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으로 은행권에 긴급자금을 투입, 급한 불을 끄면서 유로화 가치 하락세가 멈췄다. 이후로는 미국의 초저금리 기조와 양적 완화에 따른 달러화 약세로 유로화 가치가 꾸준히 올랐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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