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뇌물의 역사

입력 2015-04-14 20:32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리스트가 일파만파의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다. 메모에 거명된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언론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 파장은 커져만 간다. 국민은 정치인들이 받았다는 억대가 넘는 돈 얘기에 혀를 찬다. 여론은 특히 뇌물에 민감하다.

뇌물은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미국 연방법원 판사를 지낸 존 누난은 뇌물의 역사에서 기원전 15세기 고대 이집트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왜곡한다며 뇌물을 단속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적었다. 성경에도 ‘은밀히 안기는 선물은 화를 가라앉히고, 몰래 바치는 뇌물은 거센 분노를 사그라뜨린다’(잠언 21장 14절)고 기록돼 있다.

우리 역사에서도 뇌물 얘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신라의 김춘추가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억류됐다가 푸른색 베를 뇌물로 주고 풀려났다는 얘기부터 고려 조선시대 왕의 외척이나 지방 탐관오리들이 매관매직을 하면서 뇌물을 받았다는 얘기는 숱하게 나온다.

중국에서 ‘관시(關係)’를 넓혀나가려면 선물과 뇌물은 기본이다. 중동에도 ‘와스타(wasta)’라는 게 있는데 아랍어로 인맥이란 뜻이다. 수수료와 뇌물, 그리고 영향력을 행사求?것 등을 의미하는 단어다. 상인들이 권력과 결탁하면서 뇌물의 종류는 점점 다양해졌다. 뇌물은 돈이나 선물이 전형적이지만 예전에는 고기나 쌀 같은 음식이 주로 사용됐다. 금덩어리는 단골 메뉴였고 최근에 와서는 그림, 주식 등이 뇌물로 쓰인다. 뇌물은 관례적으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기 때문에 칭찬이나 아부는 뇌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성접대는 명백한 뇌물로 본다.

현대에 와서는 국제 거래에서도 뇌물 단속을 강화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1975년 록히드사가 일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가 법적 처리된 사건을 계기로 1977년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제정했다. 외국 관료에 대해 미국 기업이 뇌물을 주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중국도 최근 시진핑 국가주석이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외국계 기업에도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9월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영국계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대해 30억위안의 벌금을 매겼고 임원 2명을 구속했다.

선물과 뇌물을 구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뇌물을 뜻하는 ‘브라이브(bribe)’도 중세 영국에선 선물을 뜻하는 단어로 쓰였다고 한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도 정치자금인지 뇌물인지 가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참 혼탁한 세상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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