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세포서 문제 유전자 제거
암·에이즈 등에도 활용 가능
미국인 티머시 브라운은 불행이 겹쳤으나 엄청 운이 좋은 사람이다. 8년 전 그는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백혈병에 걸렸다. 일단 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받았는데 신기하게 에이즈 바이러스까지 없어졌다. 기증자의 혈액세포는 에이즈 바이러스와 결합하는 유전자(CCR5)에 돌연변이가 있었다. 선천적으로 에이즈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 같은 면역성이 브라운에게 전달되면서 에이즈까지 치료된 것이다.
미국 생명공학 회사인 상가모(Sangamo Biosciences)는 이에 착안해 1세대 징크핑거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에이즈 환자의 면역세포에서 CCR5 유전자를 잘라 제거하면 바이러스가 더 이상 감염하지 못해 에이즈가 치료된다는 것이다. 만일 이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다면 인간의 유전자를 수술해 질병을 치료하는 최초의 사례가 된다.
하지만 1 섦?유전자가위는 활성이 낮고 비슷한 유전자들도 자르는 문제가 있다. 특히 상가모가 임상시험에 사용하고 있는 1세대 유전자가위는 CCR5 유전자 바로 옆에 있는 CCR2 유전자도 자른다. 그 결과 일부 세포에서는 두 유전자 사이에 있는 DNA 부분이 통째로 삭제되기도 하고 뒤집히기도 한다. 이런 사실을 최초로 확인한 필자의 연구팀은 혈우병 환자 세포로 만든 분화만능 줄기세포에서 2, 3세대 유전자가위를 사용해 뒤집혀진 유전자를 원상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혈우병 이외에도 유전병은 매우 다양하다.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는 1만개에 달하고 신생아의 1%는 유전질환을 가지고 태어난다. 유전자가위 기술은 수많은 유전질환에 대한 근본적 치료를 가능하게 해준다. 더욱이 유전병이 아닌 암, 에이즈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일부 세포의 유전자 수술로 치료 가능한 에이즈나 혈우병과 달리 어떤 유전병은 환자 몸의 거의 모든 세포를 교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생식세포 유전자 수술이다. 즉, 수정란이 착상되기 전 유전자가위로 돌연변이 등을 원천 치료하자는 것이다.
최근 중국 연구진이 인간 배아의 유전자 수술 사례를 발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치명적 유전자 결함이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그 돌연변이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허용되면 유전병이 아닌 외모와 지능, 성격의 개선 등 다른 용도로 남용될 우려도 있다. 그 결과 미래에는 영화 ‘가타카’처럼 유전적으로 개량된 인간과 평범한 인간이 갈등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늦기 전에 생식세포 유전자 수술을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 김진수 서울대 교수는
1999년 생명공학 벤처기업 툴젠을 공동 설립했다. 2013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에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에 대한 논문을 처음 발표해 세계 과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경스타워즈] 대회 참가자 평균 누적수익률 40%육박! '10억으로 4억 벌었다'
[특집_가계부채줄이기] '그림의떡' 안심전환대출 포기자들, 주택 아파트담보대출 금리 비교로 '반색'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