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의 남도 재발견…전남 강진&나주

입력 2015-05-11 07:03   수정 2015-05-14 17:37

다산·영랑의 자취 가득한 강진
청자박물관 가면 '비취빛 상감' 매력에 쏙

왕건 고려 개국의 발판·삼봉 유배지 나주
곰탕 맛본 후 나주목 객사 금성관으로

일제시대 농산물 수탈의 현장 영산포
알싸한 홍어와 막걸리…도래한옥마을 볼 만




시속 300㎞의 KTX는 순식간에 찌든 삶과 도심에서 벗어나게 했다. 탑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덧 빌딩숲은 사라지고 하늘을 담은 호수를 지났다. 호남선 KTX 개통 이후 멀게만 느껴지던 남도는 이제 2시간이면 닿는다. 예전보다 1시간10분이 단축됐다. KTX가 한국의 시간과 공간을 압축시키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남도의 푸짐한 밥상을 이렇게 빠르게 만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남도 답사 1번지로 향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전남 강진과 해남 일대의 답사길을 ‘남도 답사 1번지’라 불렀다. 이 답사길에는 지순하게 아름다운 향토적 서정과 역사의 체취가 은은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牟눼? 벌써부터 기대감에 가슴이 설렌다.

강진은 조용하고 한적해서 역사 속에서 주목 받은 일이 없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 상감청자를 수출해 세계에 고려(코리아)를 알린 곳이 강진이다. ‘목민심서’ 등 500여권의 책을 쓴 다산 정약용의 다산초당(茶山草堂), 서정시의 거장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 등 볼거리가 많다. 강진을 거쳐 갔던 이들과 시간을 초월한 교감이 가능해지는 까닭이다.

강진은 청자의 재료인 고령토와 땔감이 풍족해 오래전부터 도자문화가 발달했다. 특히 12세기 강진의 상감청자는 고려를 세계에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청자에 무늬를 파내고 그 속에 백토(白土)를 메워 넣는 것이 상감기법이다. 은은하면서도 오묘한 빛깔을 자랑하는 비색(翡色)청자는 중국 송나라에서도 천하의 으뜸이라며 극찬을 했을 정도였다.

강진청자박물관(celadon.go.kr)은 옛날 도요지가 있던 곳에 세워졌다. 도요지란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내던 가마 유적을 말한다. 박물관 입구부터 감탄사가 쏟아진다. 청자박물관 입구 오른쪽 정원에는 ‘계룡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지붕이 모두 청자기와로 이뤄져 있다. 영롱한 비취빛의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기가 어렵다.

고려청자가 세계로 수출된 항구 중 하나가 바로 마량항이다. 조선시대에 제주의 말을 한양으로 실어나르던 항구라 해서 마량(馬良)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곳에서 오는 30일부터 놀토수산시장이 열린다. 싱싱한 해산물과 건어물을 직거래할 좌판과 할머니장터, 농산물 판매 부스가 들어선다. 싱싱한 횟감을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시식코너와 횟집, 마량의 별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먹거리 코너도 마련될 예정이다.

다산의 숨결이 깃든 남도 유배길

강진군 도암면에 자리한 백련사(baekryunsa.net)는 만덕산에 있어서 만덕사라고도 부른다. 만덕산의 바위가 한 송이 연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절 옆에는 7000여그루의 동백이 자라는데 여수의 오동도가 부럽지 않다. 동백나무는 불이 잘 붙지 않아 절터 주변에 널리 심었다고 한다. 나무에서 옹이가 나와서 동그란 구멍이 파인 이곳 동백나무는 살아온 세월이 약 800년에 이른다. 붉게 피다 떨어진 동백꽃들을 밟을까 봐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백련사 쪽에서 다산초당으로는 향하는 길은 걷기에 아주 좋다. 다산 정약용도 야생차 잎을 따 먹으며 이 길을 걸었다. 만덕산 자락의 야생 차밭을 워낙 사랑했기 때문인지 정약용은 자신의 호를 다산(茶山)이라 지었다. 다산은 신유박해 때 강진으로 유배 와서 18년의 세월을 보냈다. 다산초당이라 불리는 작은 집에서 유배생활 후반기의 10여년을 살면서 목민심서를 비롯한 500여권의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넘나드는 길을 걷다 보니 다산이 혜장선사와 학문을 논하고 토론을 벌였던 치열함도 느껴지는 듯하다. 다산기념관(dasan.gangjin.go.kr)에서는 다산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한반도에서 일조량이 가장 풍부하다는 ?坪?봄빛은 따사로움 그 자체. 강진군 남성리의 영랑생가에 이르자 꽃망울을 터뜨린 모란이 맞이한다. ‘북(北) 소월, 남(南) 영랑’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김소월과 쌍벽을 이뤘던 영랑 김윤식의 생가다. 들여다보니 초가지붕을 얹은 집 세 채를 대나무가 호위하고 있다. 영랑의 대표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비도 보인다. 찬란한 슬픔의 봄을 노래한 시다.

영랑은 500석지기 지주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한약에 조예가 깊었던 영랑의 아버지는 사랑채 앞에 13그루의 모란을 심었다. 영랑의 열정은 모란보다도 더 붉었다. 해방 후 월북한 당대 최고 무용가 최승희(당시 고교생)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양가의 반대로 그 사랑은 이루지 못했고, 실망한 영랑은 붉은 동백나무에 목을 매기도 했다. 다행히 일찍 발견돼 불발됐지만.

일제강점기 말에 영랑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광복을 앞두고선 ‘바다로 가자’ 등 저항시도 잇달아 내놨다. 6·25전쟁 중 서울에서 포탄 파편에 맞아 사망할 때까지 그의 삶은 붉게 피고 진 모란 그 자체였다. 강진군청 문화관광과 (061)430-3312

나주곰탕 먹고 금성관 산책을

나주는 껍질을 벗겨 여러 번 베어 물어도 맛이 진한 나주배와 같다. 1896년 광주에 도청이 들어서기 전까지 나주는 약 1000년 동안 호남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역할을 했다. 왕건이 고려를 개국할 때 발판으로 삼았던 지역이 바로 나주다. 고려의 제2대 임금 혜종(왕무)의 어머니가 훗날 장화왕후로 불리는 나주 오씨다. 또한 나주는 조선의 기틀을 마련한 삼봉 정도전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의 호를 딴 삼봉이란 마을도 있다.

나주에서 꼭 먹어봐야 할 것은 바로 곰탕이다. 나주곰탕은 장돌뱅이들과 장을 보러 온 백성에게 국밥을 팔던 것에서 유래됐다. 양지와 사태 등 좋은 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서 국물이 맑고 맛이 깔끔하다. 전라도 음식답게 계란지단과 고명이 탐스럽다. 소고기 수육도 유명한데,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다는 말이 실감난다.

곰탕을 먹고 산책 삼아 금성관에 들러보면 좋다. 금성관은 나주목의 객사 건물로, 매월 1일과 15일에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국내산 홍어의 진수를 맛보다

유채꽃이 영산강을 노랗게 물들였다. 사랑과 이별의 공간이었던 황포돛배 덕에 영산강에는 사람의 정이 묻지 않는 곳이 없다. 1897년 목포가 개항하자 일제는 이전부터 호남 최대 농산물 집산지이자 드넓은 평야를 끼고 있는 영산포에 주목했다. 일제는 수탈을 위해 철로도 깔았는데, 이 때문에 영산포는 일제 강점기 상업도시로 번창했다. 국사책에서 봤던 동양척식회사의 문서고가 나주시 영산동에 있다.

영산포 주변〈?알싸한 냄새가 돈다. 전라도의 명물 홍어를 맛볼 수 있는 ‘영산포 홍어거리’다. 삭힌 홍어 요리는 고려시대 나주 영산포를 중심으로 시작돼 목포와 광주에서 꽃을 피웠다. 흑산도에서 잡은 홍어는 7~10일에 걸쳐 영산포까지 올라오면서 자연 숙성된다. 현재 유통되는 홍어는 대부분 칠레나 아르헨티나 산이지만, 이곳에서 분홍빛이 감도는 국내산 홍어를 맛볼 수 있다. ‘홍탁삼합’이라 해서 톡 쏘는 홍어에 돼지고기와 묵은지를 한입 가득 넣고, 걸쭉한 막걸리 한 잔을 털어 넣으면 깔끔하게 넘어간다.


돌아오기 전 도래한옥마을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다. 풍산 홍씨 집성촌으로, 오래된 전통한옥마을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어서 2006년 전라남도 전통한옥마을로 지정됐다. 원래 최씨와 다른 성씨들이 사는 마을이었으나 풍산 홍씨가 이 부근에서 사냥하다가 예쁜 처녀에게 반해 처가살이를 하면서 홍씨 마을로 바뀌었다고 한다. 근대 한옥의 변화 양상과 건축 특징이 남아 있어서 세 채의 가옥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나주 시티투어는 9월12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운영된다. 순환버스는 오전 10시에 빛가람혁신도시를 출발해 나주역을 거쳐 나주읍성, 천연염색박물관, 반남고분군 등을 돈다. 이용료는 황포돛배 승선료를 포함해 1만원. 나주시 관광문화과 (061)339-8593

박명화 여행작가 potatopa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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