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문명이 맞닿은 터키…2300년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네

입력 2015-05-11 07:10   수정 2015-05-22 16:37

터키, 古代로의 시간여행

아폴론 신전과 원형극장…'휴양의 천국' 안탈리아에서 神話를 만나고
세월이 침전된 '목화城' 파묵칼레서 온천 후 양고기로 만든 전통 케밥 맛보고




세상 모든 나라와 민족이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터키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은 나라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차를 타고 가다 흔히 만나는 고대 도시는 물론 해협과 강, 마치 모자를 쓴 것처럼 눈 덮인 산 아래 마을에도 숱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 역사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문명이 충돌했던 흔적이기도 합니다. 잘못 알고 있는 세계사 지식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지중해와 에게해 연안에서 숱하게 만나는 고대 도시에서는 로마 시대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는 이탈리아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로마와 동로마인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로 나뉘고 476년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에도 동로마는 1000년 동안이나 번영을 누렸죠. 그래서 역사가들이 “터키를 만나면 세상의 절반이 보인다”고 말했나 봅니다.

터키의 남서부를 여행하면서 5개의 고대 도시와 2개의 바다(지중해, 에게해), 바다처럼 큰 강과 여러 개의 산을 만났습니다. 마주치는 풍경은 황홀했고 사람들의 눈빛은 따뜻했습니다. 가보지 못한 이들은 궁금해서 가고 싶어지고, 한 번 가면 또 가고 싶은 곳. 터키는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황혼녘에 빛나는 아폴론 신전

터키 남서부 여행은 일반적으로 터키 최고의 휴양도시인 안탈리아에서 시작한다. 외국인 관광객이 연간 100만명이나 방문하는 안탈리아에는 고대국가 팜필리아의 수도였던 시데가 있다. B.C. 300년경에 번성한 시데에는 지금도 다양한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역사의 풍랑 속에 부침을 거듭한 시데는 건국 초기에는 그리스의 일부였다가 이집트의 영토로 편입됐다. B.C. 67년경에는 로마의 다스림을 받았다. 시데의 유적들이 그리스 유적 같기도 하고, 로마 유적 같기도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시데에는 2300년 전 도시의 흔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도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 있다. 공중목욕탕 격인 하맘과 원형극장, 아고라, 아크로폴리스 등도 이채롭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유적은 아폴론 신전이다. 고대 유적들이 무너져 내린 잔해 사이로 기둥 5개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시데의 모든 유적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짙푸른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얗게 빛나는 기둥들은 저녁 무렵이면 황홀한 색깔로 채색된다.

팜필리아의 또 다른 도시인 아르펜도스에는 원형극장이 완벽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 ‘명상록’의 저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위해 만든 이 극장은 최대 2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무대에서 작게 소곤거려도 극장 ×?있는 관객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음향 효과가 뛰어나다. 무대에는 5개의 문이 있는데 그 아래로 작은 문들이 줄지어 있다. 검투사와 맹수들이 싸우는 날에는 이 문을 통해 맹수가 드나들었다. 오직 방패와 검에 의존해 생사를 걸고 맹수와 싸우는 검투사들은 문을 통과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지진으로 물에 잠긴 수중도시 케코바

고대 도시는 육지에만 있지 않다. 토로스 산맥 지중해 변에 자리잡은 항구도시 케코바는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찬란한 비잔틴 문명을 자랑했던 케코바는 대지진으로 물에 잠겨버렸다. 케코바의 별명이 ‘가라앉은 도시’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케코바에서 유람선을 타고 30분 정도 가면 수중 고대 도시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물결이 흔들릴 때마다 투명한 물 아래로 고대 도시의 영화가 일렁인다. 성벽이며 돌담, 계단 등이 수면에 흐릿하게 번진다. 바닷속 깊이 잠긴 마을은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바닷가 산자락에 집터가 그대로 남아 있고, 가끔 물 위로 솟은 십자가도 보인다. 가이드는 십자가가 보이는 인근이 무덤가로 추정된다고 한다. 묘하게도 케코바는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관광지라고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지진이 일어나 막대한 피해를 입는 일본의 처지와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어서일까. 수중도시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지중해의 해안선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운치 있는 암석과 비잔틴제국 시대의 성이었던 ‘시메나 성’이 언덕 위에서 별처럼 빛난다.


산 정상에 있는 고대 도시 사갈라소스

가장 이채로운 고대 도시는 안탈리아에서 북쪽으로 120㎞ 정도 떨어진 부르두르에 있는 고대 도시 사갈라소스다. 고대국가 피시디아의 수도였던 이곳은 해발 1700m의 아크다으 산 바로 아래에 있다. 1706년 프랑스인 탐험가 파울 루카스가 처음 발견한 사갈라소스에는 두 개의 아고라와 하맘, 시장터, 도서관, 제우스 신전 등이 흩어져 있다. 도시의 모습이 어찌나 생생한지 고대인들이 시장터나 원형극장에서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만 같다. 번성했을 당시 도시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요정의 도시’ ‘열정의 도시’ 등으로 불렸고 주변국 황제들이 탐을 냈다고 한다. 터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원형극장은 A.D. 518년에 지진으로 무대 부분이 완전히 내려앉았지만 관중석은 비교적 멀쩡한 상태로 남아 있다.

사갈라소스의 원형극장은 로마인들이 가장 좋아했던 검투 경기의 시험무대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검투를 벌여 관객들의 반응이 좋으면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시합을 벌였다고 한다. 검투사와 검투사 간의 시합을 넘어 맹수와 검투사가 싸움을 벌인 것도 어쩌면 이곳이 시초인지 모른다. 원형극장은 이제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쟁쟁거리는 칼 소리도 멈췄다. 다만 산꼭대기에 머물렀다 따가운 햇살에 지칠 때마다 얼굴을 간질이는 바람만이 잉잉거린다. 유물들 사이로 긴 그림자가 보일 때까지 머물다 돌아가려는 참에 뒤를 볼아보니 도시는 이미 어둠 속에 묻혔고, 고대 도시는 다시 긴 휴식에 들어갔다.


석회층 온천 파묵칼레와 히에라폴리스

또 한 곳의 고대 도시는 석회층 온천지대인 파묵칼레 위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터키를 홍보하는 책자에 빠짐없이 나오는 파묵칼레는 마치 계단식 다랑이논처럼 생겼다. 소금의 벽을 겹겹이 쌓아 놓은 것 같은 하얀 석회층이 절벽 한 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고 그 아래로 석회를 머금은 웅덩이들이 청아하게 빛난다. 이 석회층은 오랜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한다. 아침에 푸르던 물빛이 햇살이 따가워지는 낮에는 흰색이 되고, 석양이 물들기 시작하면 붉은 색으로 변한다.


파묵칼레는 로마 황제들이 망중한을 즐겼던 곳이다. 클레오파트라가 방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석회층 언덕에는 ‘히에라폴리스’라 불리는 고대 로마 유적지가 있다.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왕조의 터전이었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을 가진 ‘히에라폴리스’는 한때 인구 8만명에 이르는 대도시였다. 히에라폴리스에는 터키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관 1000여기가 남아 있다. 치료와 휴식을 위해 몰려들었던 병자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히에라폴리스가 휴양시설이어서 테르메라고 불린 대형 온천욕장이 있었다. 온욕실과 냉욕실은 물론 스팀으로 사우나를 할 수 있는 방, 대규모 운동시설, 귀빈실까지 갖추고 있어 현대식 사우나에 비해도 규모와 시설이 뒤처지지 않을 정도다. 번성했던 히에라폴리스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1354년 이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이었다. 대지진 이후 역사 속에 사라진 도시를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견했고, 발굴과 복원 작업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미오일 생산지 으스파르타

터키 남서부 여행지에서 장미향 가득한 도시 으스파르타를 빼놓을 수 없다. 1880년대만 해도 터키에는 장미가 없었다고 한다. 장미를 보급한 사람은 ‘터키의 문익점’ 격인 이스마일 에펜디였다. 당시 장미 원예의 선진국이었던 불가리아는 장미 품종 중 최상급으로 치는 다마스크 로즈의 씨앗이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이스마일 에펜디는 불가리아 여행 도중 장미의 계곡에 화사하게 핀 다마스크 로즈를 터키에 들여오고 싶어서 지팡이 속에 씨앗을 몰래 숨겨 가져왔다 한다.

이 ‘터키의 문익점’ 덕분에 으스파르타는 세계 1위 장미오일 생산지가 됐다. 전 세계 장미오일 공급량의 65%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장미오일을 얻으려면 엄청난 양의 장미가 필요하다. 장미 100만송이의 무게가 약 4인데 이를 가공하면 겨우 1㎏ 정도의 장미오일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고급 향수, 화장품 등의 필수 원료로 쓰이는 장미오일은 향이 무려 10시간 이상 지속될 정도로 강렬하다.

으스파르타에서 가장 대표적인 장미농원은 규네이켄트다.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장미 재배에 매달린다고 할 정도로 규네이켄트는 장미 재배에 적극적이다. “귤(터키어로 장미)을 잘 재배해야 인생을 재배할 수 있고, 귤을 모르면 딸도 안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장미꽃이 활짝 피는 계절은 5월 말에서 6월 중순이라 아직 꽃도 피지 않았지만 장미오일을 생산하는 공장 주변에는 그윽한 장미향이 진동했다.

으스파르타의 또 다른 명물은 터키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인 에이르디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호수는 바다처럼 광활하다. 여의도 면적의 무려 61배나 되는 517㎢의 호수는 식수로 사용할 만큼 깨끗하다. 진한 코발트빛의 이 거대한 호수는 계곡물이 모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지하에서 솟아났다고 하니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짙푸른 호수 물빛과 가늘고 긴 반도처럼 보이는 작은 섬 등 경관이 아름다워 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 4대 음식, 터키의 케밥

터키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음식이다. 작게 썬 고기 조각을 구워먹는 전통요리인 케밥은 주로 양고기로 만들지만 소고기나 닭고기로 만들기도 한다. 채소를 더해 조리하기도 한다. 케밥의 종류는 수십가지가 넘는데 그중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 굽는 시시 케밥과 도네르 케밥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고기가 메인인 케밥을 먹을 때는 주로 필라프(터키식 볶음밥)를 곁들이며 샌드위치를 만들 듯 피데(밀가루 반죽을 납작하게 만들어 화덕에 구운 터키 빵)에 싸먹기도 한다.

전통 케밥집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으스파르타에 있는 카다르라는 곳이다. 불가리아에서 장미 씨앗을 가져온 이스마일 동상 바로 앞에 있는 카다르는 1851년 영업을 시작했다. 터키에서 가장 오래된 케밥집인 이곳은 4대를 이어온 전통 있는 집으로, 미국 영화배우 알렉스 볼드윈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명사가 터키를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찾아가는 음식점이라고 한다. 200~250도의 화덕에 무려 5시간 동안 구운 어린 양고기 맛이 일품이다.

안탈리아(터키)=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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