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메르스 vs 중동감기

입력 2015-06-09 20:31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공자는 “내게 정치를 맡기면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부터 하겠다”고 했다. 실제에 부합하는 이름을 찾는 게 정명(正名)이다. 권력자들은 불의(不義)를 저지르면서도 그것을 정의(正義)로 이름 붙이곤 한다. 잘못된 이름과 용어는 개인의 판단력을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은 메르스(MERS)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독감으로 2375명이 사망했고, 2009년 신종플루로 263명이 사망했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난리일까. 여러 원인 중 하나가 낯설고 두려운 그 이름 때문이다. 메르스는 공식적으로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Coronavirus:MERS-CoV)에 의한 호흡기질환이다. 일명 중동호흡기증후군이다.

메르스는 본질적으로 감기, 독감과 비슷하다. 감염력은 독감 등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보다 오히려 낮다. 환자의 호흡기 분비물을 통한 병원 내 감염과 가족간 감염 외에 공기 감염은 없다. 정상적인 면역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감기처럼 지나간다. 예방법도 감기와 같다. 중동감기나 중동독감이라면 좀 나았을 텐데, 겁나는 용어를 쓰니 두려움이 더 커진다.

공포심은 아무런 정보가 없거나 정보가 왜곡될 때 배가된다. 메르스의 병원 밖 감염 사례가 세계적으로 전무한데도 옥외 감염을 걱정해 휴업령까지 내렸다. 쇼핑몰에 발길이 끊기고 서민 경제가 죽을 쑤고 있다. 국제대회 취소 등 전 국민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제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자대회에 마스크를 쓰고 참석한 외국인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리만 안방에서 마스크 쓰고 다닌다. 앞으로는 ‘~독감’이나 ‘신종변형감기’ 등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볼 일이다.

잘못된 용어 때문에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는 한둘이 아니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요금인상인데 현실화니 조정이니 이상한 말로 덧칠을 한다. 관료들의 행정용어만 그런 게 아니다. 경제 문제에 ‘사회적’이란 용어를 붙이면 금세 개인이 아니라 정부나 사회 책임, 비정상적인 정책 개입으로 변형된다. 그동안에도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로,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평등추구로, 일감몰아주기는 내부거래로 용어를 바꾸자는 제안이 많았다.

이참에 메르스뿐만 아니라 정치색 짙은 용어들도 바로잡아 보자. 공자는 물론이고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 서양 철학자들도 언어가 사고를 좌우하고 개념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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