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증오정치

입력 2015-06-22 20:3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움베르토 에코의 역사소설 프라하의 묘지에 히틀러 같은 인물이 나온다. 이름은 시모니니 대위. 먹는 것만 빼고 세상 모든 걸 다 미워하는 증오의 화신이다. 반유대주의 편견과 음로론으로 무장한 그는 다른 민족들을 혐오하고 예수회와 프리메이슨, 여성을 경멸한다. 문서위조의 달인에다 지독한 거짓말쟁이, 사악한 연쇄살인범이기도 하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도 증오심으로 가득한 돼지가 등장한다. 마르크스를 상징하는 늙은 돼지는 ‘인간과 인간의 모든 방식에 대한 증오’를 동물들의 의무라고 부추긴다. 새로 권력을 잡은 돼지 나폴레옹(스탈린)과 그의 개들(비밀 경찰)은 짐말 복서(소비에트 민중)를 죽을 때까지 부려먹는다. 21세기의 북한도 다르지 않다. 대외적 증오심을 활용한 벼랑 끝 통치가 동토의 소비에트와 닮아 있다.

증오정치는 무자비한 폭력과 피의 보복을 부른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인종청소를 해치우는 독재정권, 특정 민족에 대한 적개심을 내부결집 전략으로 악용하는 정치인, 상대 진영을 조소하고 악담하는 것으로 자기 집단의 약점을 덮으려는 보스는 결국 파국을 맞는다. 그런 줄 모르고 막말정치와 편파적 민족주의로 사람들의 눈을 멀게 만드는 이는 우리 곁에도 많다.

단순한 분노는 외부 자극에 일시적으로 반응하는 순간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증오는 공격 충동을 반복적으로 쌓은 복합감정이기에 오래간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진다. 적을 향한 증오는 전쟁에 필수적이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들은 적개심을 부추긴다. 증오심은 상대를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무자비한 학살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증오심을 갖고 특정 집단을 공격하는 걸 증오범죄라고 한다. 가장 만만한 타깃은 흑인이다. 미국 연방수사국에 따르면 연간 증오범죄로 피해를 입는 흑인은 100만명 중 50명꼴이다. 인디언이 100만명 중 30명이고, 히스패닉, 아시안, 백인 등이 10명 안쪽인 데 비해 훨씬 많다. 최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흑인교회 총기 난사 사건도 마찬가지다. 스물한 살짜리 범인은 전형적인 백인 우월주의자였다.

특정 집단을 미워하는 증오그룹이 미국에만 700여개나 있다니 섬뜩하다. 대체 증오의 올가미를 벗어날 길은 없는가. 현자들은 예부터 ‘증오는 벽이고 사랑은 문’이라고 했다. 공자 말씀 같지만 그게 답이다. 견디기 힘든 슬픔 속에서도 범인을 향해 “하나님께서 너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기도하겠다”고 말한 희생자 가족들의 ‘위대한 용서’에 고개가 숙여진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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