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롯데의 분할을 요구하는 자(者)가 문제다

입력 2015-08-03 18:53  

연합파 對 독립파 대립구도 양상
단독승계라야 기업 동일성 유지
상속은 노년이 들이닥치기 전에…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집이 낡아 무너지려고 할 때 누구라도 그 집에서 뛰쳐나오지 않겠는가. 육신이 낡아 더는 지탱할 수 없을 때 왜 우리는 그 속에서 뛰쳐나와 먼저 자신의 영혼을 구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 사람은 로마의 세네카였다. 노년의 불행에 대한 그의 경고는 르네상스 들어서야 재조명되었고 인간수명 100세를 넘보는 지금 새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되고 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흔들리는 영혼에 기대어 무언가를 기획해보겠다는 철부지 자식들을 보면서 우리는 준비 없는 노년이 가져올 혼란들을 두려운 마음으로 직시하게 된다. 필부들이야 또 그렇다 하겠지만 큰 재물을 쌓은 뒤끝에 승냥이들처럼 그것을 차지하려는 자녀들에게 포위되는 것은 실로 노년에 직면하는 가장 큰 위험이다. “죽는 것이 리스크가 아니라 오래 사는 것이 리스크”라고 복거일은 말했지만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그 말을 더욱 실감케 한다.

사실 상속만큼이나 도덕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주제는 없다. ‘우연적 여건에 의한 부당한 불평등은 시정되어야 한다’는 소위 정의론자들이야 몰수적 상속세라는 간단한 시정장치로 모든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간만이 축적하는 동물이어서 축적으로부터 상속에 이르는 과정을 제외하면 기실 삶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말이다.

남겨지는 것이 롯데그룹 정도에 이르면 곧장 국민적 관심사로 변질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렇게 되면 개개인의 사적 갈등을 넘어 법률의 간섭과 처분을 끌어들이게 된다. 상속자의 유언에 상관없이 모든 상속재산의 절반을, 선취분이라는 이름으로, 배우자에게 넘기도록 민법개정안을 만들고자 했던 작년의 그 철없는 법률가들이라면 지금은 꽤 의기양양해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라면 지금에 와서 그런 개정안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를 모골이 송연하도록 재확인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속은 언제나 문제 투성이였다. 놀부가 잘살고 흥부가 가난한 이유는 오로지 장자에게 몰아주는 ‘몰빵’ 상속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선은 토지가 전부였고 세대를 넘길 때마다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한 논두렁들이 생겨나면서 생산성은 잘게잘게 찢어진 농지만큼이나 약화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고안된 것이 바로 장자상속 제도였다. 그렇게 1인에게 몰아줌으로써 어렵사리 농지의 생산성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차남들은 하늘에서 박씨라도 떨어지지 않으면 도저히 생활의 개선이 불가능했고…. 흥부전은 그렇게 차남들의 원망이 쌓이고 쌓여 태어났다. 지금의 시대라고 달라질 것은 없다. 우리가 기업이라고 부르는 상속재산은 부침이 격심한 것이어서 더욱 신중하게 경영능력을 비교한 다음 치밀한 숙고 끝에 후계자를 고르는 것이 다를 뿐이다.

문제는 후계자를 자처하는 자녀들이 여러 명인 경우다. 마음이 약한 어버이들은 대개 n분의 1로 분할하는 방법을 택하지만 이는 재산의 분산만 초래하게 된다. 결국 경영능력을 기준으로 몰아주는 상속이 필요하고 또 당연히 그래야 기업과 사회가 발전한다. 우리가 보기에 신동주와 신동빈의 차이는 한쪽은 형제들이 재산분할을 위해 동맹군을 형성한 것처럼 보이고 다른 한쪽은 단독상속과 승계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상속할 대상이 기업이라면 단독승계가 문명적 상속 방법이다. 공동상속 혹은 분할상속은 결국 기업의 힘을 분산시키고 약화시킨다. 자녀들로서는 좋은 선택일지 몰라도 기업으로서는 치명적이다. 롯데그룹의 상당수 이사들이 신동빈 측에 서고 있다는 것은 그런 구조학을 잘 보여준다.

소위 가업승계 상속세 혜택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어야 한다. 자녀 여러 명에게 분할상속하는 것은 가업승계도 기업승계도 아니다. 상속세 혜택은 한 명의 승계자에게만 주는 것이 논리에 맞다. 신 총괄회장은 치열한 심사숙고를 견뎌 내기에는 이미 건강이 부적절한 상태인 것 같다. 어느 날 노년이 들이닥치기 전에 서두를진저.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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