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라진 몰차노바

입력 2015-08-06 18:01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푸른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가라앉은 심연은 공포 그 자체다. 시커멓게 뚫린 바닷속 검은 구멍으로 잠수해 내려가는 장면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무언가 큰 것이 뒤에서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 따라다닌다. 잠수부는 그런 극한의 깊이를 내려간다.

산소호흡기 같은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잠수하는 것을 스킨다이빙이라고 한다. 기록갱신을 위한 극한스포츠가 되면서 요즘은 프리다이빙이라고 부른다. 뤽 베송 감독의 1988년 영화 ‘그랑블루’는 누가 더 오래 바닷속에서 견디느냐를 다투는 다이버들의 얘기를 그렸다. 세계챔피언 엔조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 지점까지 어둠을 밀고 내려갔지만 결국 제때 떠오르지 못한다. 살아남은 주인공 자크의 대사. “바다 밑바닥에 있을 때가 가장 힘들어요. 다시 올라와야 할 이유를 찾기가 어려우니까요.”

심연의 다이버들에게 심해란 어떤 의미일까. 닿을 수 없는 곳이요, 그래서 갈 수 없는 곳이며 달리 말하면 이상향이다. 이상향을 향해 가다 죽는 것은 진정한 자유를 향한 해방이다. 영화는 다시 심해 속으로 끊임없이 내려가는 자크의 다이빙에서 페이드 아웃된다.

엊그제 꼭 그랑블루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프리다이빙의 여제’로 불리는 러시아의 나탈리아 몰차노바가 바닷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스페인 동쪽 포르멘테라 섬 해안에서 잠수하다 실종됐다. 당국은 “오리발 없이 수심 30~40m에서 헤엄치다 빠른 물살에 휩쓸려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정도 깊이에서 사고를 당할 몰차노바는 아니다. 20여년간 23개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갈아치운 세계기록만 41개다. 물속에서 9분2초간 숨을 참은 기록이 있고, 2009년에는 101m까지 잠수했다 올라와 여성 최초로 100m를 돌파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프리다이버로 활동하고 있는 아들 알렉세이는 “어머니는 바닷속에 계실 것 같다. 어머니는 그걸 좋아하실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화 ‘그랑블루’에서 주인공은 애인의 임신소식을 듣고도 다시 바다로 내려가려 한다. 돌아오지 못할 다이빙이었다. 애인은 그의 손을 놓아주며 말한다. “내려가서 보세요, 내 사랑.” 심해 다이버들의 바다는 일반인의 생각 너머에 있는 모양이다.

몰차노바는 한 인터뷰에서 “수영장이 러닝머신이라면 바다는 숲”이라며 “훨씬 더 위험하지만 내려갈수록 만족감도 더 커진다”고 말했다. 53세의 나이에도 세계 최고의 다이버였다. 그는 실존의 극한으로 몰고가는 심해로 사라져갔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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