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엔진은 생산요소 아닌 '기업가(起業家) 정신'…생산적 기업활동 돋우는 제도혁신이 중요

입력 2015-08-07 19:10  

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24> 경제 회생의 관건은 제도 혁신



경제는 무엇 때문에 성장하는가. 다시 말해 한 나라의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근본 요인은 무엇인가.

한국 경제는 1980년대까지 30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이 9%를 넘는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그러나 2011~2014년에는 3.05%에 그쳤을 정도로 저성장이 계속됐다. 올해도 성장률 3% 턱걸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처럼 저성장이 지속되자 국민 사이에 일자리, 소득, 노후 걱정이 깊어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최근의 저성장이 경기변동과 같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OECD 회원국 중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가장 빠르게 추락하고 있으며 2030년대 후반에 가면 한국의 성장엔진이 사실상 멈출 것이라고 한다.

‘이대로 가면’ 미래가 없다는데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지금보다 못한 경제 환경을 다음 세대에 유산으로 넘기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식어가는 성장엔진을 퓨痢?수 있을까. 이 문제는 경제성장 원인에 관한 것으로 경제학이 태어난 처음부터 주요 관심사였다. 그리고 주류경제학에서는 수학적으로 정교한 이론을 발전시켜 지금까지 경제 분석과 전망에 널리 활용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한 나라의 경제성장은 노동력(인적 자본)과 자본(물적 자본)의 기술적 생산함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노동, 자본, 기술의 3대 생산요소가 축적돼야 비로소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통적 성장이론의 요지다.

그러나 전통적 이론은 기술적으로 정교하지만 성장의 근본 원인을 간과하고 있다. 이 이론은 역사적 경험과도 잘 맞지 않는다. 저개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가 전통적 이론과 처방에 따라 성장을 꾀했으나 대부분 실패했음이 이를 방증한다. 한국의 성공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지만 이마저도 전통 이론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국은 이론이 상정하는 바와 달리 기술과 자본,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경제발전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한국에 없는 자본은 외국에서 빌려와 벌어서 갚겠다는 결연한 자세와 함께, 없는 기술은 리버스 엔지니어링의 창조적 모방을 통해 배워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를 발전시켰다. 자본과 기술의 축적은 성장 그 자체였지 성장의 원인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국 경제의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선 예전에도 논쟁이 있었다. 1993년 세계은행은 ‘동아시아의 기적’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한국의 고도성장은 인적, 물적 자본과 기술의 놀라운 축적과 함께 자원을 생산적 용도에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정부정책과 관련이 깊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통 이론에 충실한 설명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미국의 경제학자 에드먼드 펠프스는 “왜 불과 수십년 만에 주변에 비슷하게 가난한 다른 나라들과 달리 한국과 몇 나라에서만 그토록 빠르게 자본축적이 일어났는지가 우리가 가져야 하는 의문의 본질이며, 그 답은 기업가 정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취지로 신(新)고전학파 성장이론의 한계를 꼬집었다.

기업가 정신이야말로 당사자 본인과 국민경제의 발전을 견인하는 진정한 동인이다. 기업가 정신은 굳이 회사를 소유하거나 경영하는 기업인에게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일반 개인도 기회를 포착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에 나서면 그 또한 기업가(起業家·entrepreneur)다. 기업가가 추구하는 이익이 반드시 금전적일 필요도 없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금전적 이익이 아닌, 정치 소득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기업가 정신의 일환이다. 따라서 경제 분야는 물론이고 정치, 행정, 사회 각 분야에서 생산적인 기업가 정신이 함께 왕성하게 발현될수록 경제활동은 더욱 활발해지면서 성장 잠재력도 빠르게 높아질 것이다.

돌이켜보면 주류경제학에서 기업가 정신을 배제한 것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기업가 정신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측정하기 어려우며, 수학적으로 미분 가능한 모형에 포함할 수 없는 방법론상의 제약 때문에 외면했던 것이다. 그러나 방법론에 갇혀서 진실을 외면한 것은 본말을 뒤바꾼 잘못이다. 경제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개인이든 법인이든 인적·물적·지적 자본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기업가 정신의 문제다. 또 이런 의사결정은 그 사회의 법령, 관행, 문화, 가치관 등의 제도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법령의 실질 내용이 사적 재산권과 계약·경쟁의 자유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지 않거나, 법령은 괜찮은데 집행이 오락가락해 믿을 수 없으면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위험이 높은 투자에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제도는 기업가 정신과 성장을 연결하는 핵심고리다. 더글러스 노스를 비롯한 신(新)제도경제학자들이 제도를 경제 성장의 궁극적인 결정 원인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에는 제도와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는 추세다. 유럽연합(EU)을 필두로 정책 활용도 늘고 있다. 한국에 앞서 성장 한계와 청년실업에 시달리던 EU에서는 근본해법으로 기업가 정신의 재점화를 내세우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가 중심이 돼 ‘기업가 정신 2020 실행계획’을 세워 회원국에 배포까지 했다. 그만큼 전통적 성장이론과 처방에 의존해서는 EU가 당면한 경제난국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도 성장 한계를 극복하려면 제도와 기업가 정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성장은 생산요소가 좌우한다는 이론으로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과거에는 노동, 자본, 기술의 생산요소가 부족해도 고도성장했지만 지금은 미활용을 걱정할 만큼 여유가 있어도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경제성장은 생산요소가 아니라 기업가 정신에 의해 좌우된다. 기업가 정신은 다시 경제활동을 규율하는 법령과 관행, 문화 등의 제도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을 되살리려면 기업가적 활동을 위축시키는 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 한국의 제도 수준은 OECD 34개 회원국 중 29위여서 개선의 여지가 많다. 그만큼 제도혁신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여지도 많다.

기업가 정신의 이해와 오해

정치·사회 등 다른 분야에도
기업가 정신 적용될 수 있어

벤처창업 정신과는 다른 의미

기업가 정신을 진작시키려면 먼저 기업가 정신의 개념과 기능을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누가 기업가인지, 그리고 기업가 정신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경영실무, 사회학, 경제학에서 제각각 정의해왔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개념이 복잡하고 혼란하기 때문에 잘못 이해하고 오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기업가 정신 이론을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세 가지 흐름으로 대별된다. 첫째는 조지프 슘페터(사진)의 이론으로, 기업가 정신에 의해 이뤄지는 ‘창조적 파괴’를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본다. 둘째 불확실성과 위험을 구분해 설명하는 프랭크 나이트의 이론으로, 여기에서 기업가는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대가로 이윤을 얻는 사람이다. 셋째는 이스라엘 커즈너를 비롯한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으로 기업가의 이윤 기회 인지능력을 강조하며, 기업가적 발견 과정에 참여하는 모두를 기업가로 본다. 종합하면 기회를 기민하게 포착해 불확실성 속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실천에 나서는 사람이면 누구나 기업가다.

따라서 기업가(起業家)는 기업인(企業人)과 동의어가 아니다. 기업가를 기업인으로, 기업가 정신을 벤처창업과 같은 창업가 정신과 같은 의미로 쓰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중소기업이 대기汰막?성장하는 것과 같이 경제성장에는 기존 기업의 기업가 정신도 중요하고, 종업원의 사내 기업가 정신도 중요하다. 그리고 기업가 정신은 경제 분야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정치와 행정, 사회 각 분야에서도 적용해야 하는 개념이다.

또 기업가 정신이 커질수록 좋은 게 아닐 수도 있다. 기업가 정신을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기능으로 보면, 모든 기업가 정신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윌리엄 보몰 교수는 기업가 정신을 생산적, 비생산적, 파괴적으로 나누고 비리와 부정으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파괴적 기업가 정신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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