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이혼하는 부부처럼…사실혼도 재산분할 가능"

입력 2015-09-29 19:12   수정 2015-09-30 10:49

판결문으로 보는 세상

사실혼 기간 23년인 노부부, 남편이 관계 청산 뒤 소송
법원 "아내는 남편 측에 재산 30% 지급하라"



[ 김인선 기자 ] #김순자 할머니의 이야기

처음 이갑배 할아버지를 만난 건 1990년 농수산물 시장에서 일할 때였어. 그이나 나(70)나 한 차례씩 아픔을 겪은 처지라 통하는 게 많았지. 그이는 전처와의 사이에 장성한 5남1녀를 뒀고, 나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둔 채 혼자 살고 있었거든. 난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 뒷바라지하는 중이었지.

고단한 새벽장사 일을 함께하며 정이 들었어. 우린 그해 7월부터 살림을 합쳤고, 바깥양반이 떠난 2013년까지 23년을 사실상 부부처럼 지내왔지. 혼인 신고만 안했을 뿐 상인들 사이에선 잉꼬부부로 꼽혔어.

집안 안팎살림을 살뜰히 챙기는 것은 내 몫이었어. 바깥양반 건강이 나날이 나빠졌거든. 각혈, 뇌경색, 다리 마비 증세로 병원 신세를 지기 일쑤였지. 2009년에는 암 진단을 받았고, 2013년에는 다리 절단 수술까지 했어. 그이를 돌보면서 시장 점포를 꾸려가는 일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어.

그런데 남편은 2013년 6월3일 “우리 관계는 끝났다”며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어. 당신 병수발 들며 살림까지 해온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더 기가 찬 사실은 바깥양반이 그 얘기를 하고 사흘 뒤인 6월6일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는데 그 아들인 A가 소송을 이어받아 진행하고 있는 거야. A는 심지어 내가 할부금을 갚고 있던 남편 소유 화물차도 나도 모르게 1000만원에 팔아버렸지. 정식 부부가 아니라 재산 상속권도 없는 내게 너무한 게 아닌지 세상 사람들에게 묻고 싶네.

#이갑배 할아버지의 아들 A의 이야기

우리 육남매는 아버지가 점포에서 함께 일하던 분과 새살림을 차린다고 했을 때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아버지도 아버지 인생이 있는데, 말릴 수는 없었다. 우려했던 일이 하나둘 불거졌다. 아버지는 1997년 새어머니의 아들 B와 공동명의로 빌라 한 채를 마련했고 그 집에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거주했다. 그런데 그 빌라는 3년 뒤 새어머니에게 지분을 파는 방식으로 넘어갔다.

새어머니는 아버지 이름의 점포를 넘겨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신이 갖고 있던 점포와 합쳐서 평수를 늘리면 시장이 리모델링된 뒤에 더 큰 점포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일은 자식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큰 수술을 받고 우리집 근처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병원이 너무 멀어서 가기가 힘드네.” 새어머니는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해 어버이날, 둘째 형은 아픈 아버지를 모시고 새어머니를 찾아가 식사를 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날 새어머니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겠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법원의 판단은

항소심을 맡은 서울가정법원 가사1부(수석부장판사 민유숙)는 지난 7월 “두 사람의 사실혼 기간이 23년에 이르고 피고 김씨가 그 기간 가사를 전담하고 이씨를 간병하면서 점포 운영을 주도적으로 영위했으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법률상 상속을 받지 못한 점 등을 참작했다”며 이씨와 김씨의 재산분할 비율을 30%, 70%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순재산 4억2000만원 중 이씨의 몫인 30% 가운데 이씨의 순재산 4800만원을 빼면 피고 김씨가 이씨에게 줘야 될 재산은 7800만원이므로 이 돈을 이씨의 자녀 6명에게 13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민법상 사실혼 관계가 끝나면 재산분할 청구를 할 수 있지만, 사실혼 상태에서 배우자가 사망하면 남은 상대방에게는 재산분할 청구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사실혼 관계에선 상속권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사망 3일 전 사실혼이 해소됐기 때문에 재산분할 청구권이 인정됐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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