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열악한 소년범 처우

입력 2015-10-01 18:20  

여상훈 < 서울가정법원장 shyeo@scourt.go.kr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다.

서울가정법원 소년법정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불러주는 이 없는 풀꽃 같은 아이들이 온다. 언뜻 보기엔 거칠고 무례하다. 몸에 용이나 도깨비 문신을 새겨 넣고 폭력이나 절도, 사기 같은 다양한 죄명으로 법정 밖 대기실에 앉아 있다. 이들을 자세히 본다고 예쁠까. 오래 본다고 사랑스러울까.

하루가 멀다 하고 소년들의 심각한 범죄 관련 기사가 신문지상을 장식한다. 그때마다 소년범들을 격리하고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하지만 실제 그 정도의 흉악범죄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소년 범죄의 대부분은 불우한 가정환경과 학교 부적응, 사회의 무관심 때문에 일어난다. ‘아픈 아이들’이 저지른 소소한 생계형 범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소년범 처우는 너무도 열악하다.

많은 아이가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분노조절장애 등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전국에 단 하나뿐인 의료소년원엔 이와 관련한 상주 의사조차 없다. 현재 소년보호시설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부족으로 존?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소년원 아이들은 하루하루 배고픔을 참으며 잠자리에 든다.

혹자는 “죄를 지은 아이들인데, 사회가 품어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세상에 태어난 지 겨우 10년이 좀 넘은 아이들이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부모와의 이별,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다. 학교조차 마음 붙일 곳은 돼 주지 못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꿈을 잃었다. 꿈을 잃은 아이들이 앞으로의 긴 인생을 살아가기에 이 세상은 너무 험난하다.

우리는 주유소와 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 편의점에서 매일 이 아이들을 만난다. 피자와 치킨, 맥주를 주문하면 이 아이들을 집 현관 앞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내 아이에게 안전한 이웃을 물려주겠다”는 단순한 이기심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 소년범을 차갑게 내치면 안 된다. 둥지를 잃고 흔들리는 소년들에게 우리가 온전한 ‘한 마을’이 돼 줘야 한다. 소년들을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할 때다. 자세히 보면 예쁘다. 오래 보면 사랑스럽다.

여상훈 < 서울가정법원장 shyeo@scourt.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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