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때 지휘봉 잡아 건강분야 집중…과감한 개혁 주도…7년 만에 '잘나가던' 과거 명성 되찾아

입력 2015-11-27 07:02  

세계 최대 식품회사 네슬레 CEO 폴 불케

어린시절 비행기 타는 게 꿈
세계 여행 꿈꾸며 외국어 공부…6개국 언어 능통한 비즈니스맨
1979년 해외지사 많은 네슬레 입사…한달에 두 번씩 경비행기 몰아

도전 즐기는 정면돌파형
폭동으로 혼란한 페루 근무때 차로 곳곳 다니면서 시장조사
16년간 남미서 다양한 업무 경험

단순명료한 경영스타일
실적 부진 브랜드 과감히 정리
영양·건강 선도 기업 목표 위해 어린이 영양제 사업 등 인수



[ 이정선 기자 ]
그룹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2008년 몰아닥친 금융위기는 140여년의 전통을 가진 네슬레에도 남의 얘기일 수 없었다. 난세에 지휘봉을 잡은 폴 불케의 취임 일성은 단순 명료했다. 하지만 강렬했다. “그동안의 성취에 먹칠하지 말자(Don’t mess with success)”였다. 전 세계 86개국에 있는 450개 공장에서 34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네스카페 등 8000여종의 브랜드를 갖고 있는 세계 최대 식품회사의 자존심을 자극한 발언이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네슬레는 여전히 잘나가는 기업이다.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간 감소했지만 45억스위스프랑(약 5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불케는 지금도 글로벌 식품업계의 리더인 네슬레를 이끄는 최고경영자(CEO)다.

6개 국어 구사…타고난 해외 근무 체질

벨기에 태생의 폴 불케(60)는 어린 시절 북해 연안의 오스텐드라는 지방에서 자랐다. 공항이 바라보이는 침실 창문을 통해 불케는 늘 날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싶은 열정을 품었다. 어린 시절의 동경은 그를 네슬레로 이끈 동기가 된다.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1977년 벨기에에 있는 한 종이회사에서 근무하던 불케와 그의 부인은 다른 나라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불케의 친구는 네슬레 지원을 권유했다. 해외 지사가 많은 네슬레가 그의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1979년 불케는 네슬레에 입사했다. 1년 후 그는 소원대로 페루에서 판매부문의 수습직원으로 일했다. 1996년 유럽으로 돌아온 뒤 네슬레 포르투갈 마케팅담당 이사, 네슬레 체코·슬로바키아 마케팅담당 이사, 네슬레 독일 마케팅담당 이사, 네슬레 미국 전무 등을 지냈다. 어린 시절부터 세계를 동경하며 갈고닦은 외국어 실력은 각국의 지사를 거치면서 일취월장했다. 그는 플라망어(벨기에 북부 지역에서 사용하는 네덜란드어)를 비롯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독일어, 영어 등 6개 국어를 구사한다. 불케는 자신을 ‘세계시민’이라고 부르곤 한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

불케의 이력을 살펴보면 도전을 즐기는 성격에 가깝다. 네슘뮈【?첫 근무지로 갔던 페루 시절도 그랬다. 페루는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을 진압하는 문제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런 위험에도 불케는 폭스바겐 비틀을 타고 페루 구석구석을 다니며 시장조사를 했다. 위험 지역으로 가족들과의 여행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겁이 없던 시절이었다.

불케는 경제잡지 배런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움을 자세히 바라보면 더 잘 배울 수 있다. 그곳에서 더 나은 시절을 기약하고 떠나는 많은 회사를 보았다. 하지만 네슬레는 남았다”고 회상했다. 불케는 이후 16년간 남미에 더 머물렀다. 에콰도르와 칠레가 주요 무대였다. 이 기간 그는 유통에서 마케팅까지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경험했다.

2000년부터 4년간 네슬레 독일 마케팅담당 이사로 일할 때도 그에겐 위기의 시기였다. 유로화가 도입되고 할인판매업자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틈새를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도전을 반겼다. 그는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많은 것을 해냈다”고 회고했다. 이후 네슬레 미국 전무로 옮겨간 그는 2008년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휩쓸던 무렵 CEO에 올랐다.

회사의 사정도 나빠지고 있었다. 여러 나라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그에게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불케는 위기관리 대응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소비자들이 떠나가지 않도록 시장 점유율을 지키는 일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 그는 같은 브랜드 내에서 다른 가격대의 상품을 만들어 소비자를 붙잡는 전략을 짰다. 불케는 “돌이켜보면 매우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며 “만약 폭풍우처럼 거친 시간을 경험해야 한다면 처음에 겪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간단명료한 경영 스타일…꾸준한 개혁

CEO에 취임한 뒤 불케는 체질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네슬레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설정했다. ‘영양’과 ‘건강’ 분야를 선도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2012년 말 제약사 화이자의 뉴트리션 사업부를 인수한 것도 어린이 영양제 시장의 강자로 올라서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는 새로운 방향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브랜드는 과감히 없애버렸다. 불케는 하지만 급진적인 방식의 개혁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인 만큼 이제껏 쌓아왔던 성과들이 자칫 요란스러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서다. 단순 명료하지 않은 실행 방안도 꺼린다. 복잡한 실행 방안은 실제로 작동되기 어렵다고 믿는다.

네슬레는 각 제품에 설탕과 소금, 포화지방의 함량을 줄이고 나쁜 지방으로 불리는 트랜스 지방을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식량난을 겪는 빈곤국가에는 철분이나 요오드와 같은 미량 원소를 첨가한 고체형 육수를 제공하고 있다. 불케의 경영 방침에 따른 조치들이다. 불케는 “우리가 하는 일이 사회를 위해서도 가치를 창출한다면 계속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린 시절 비행기 여행을 꿈꿨던 불케는 다국적 기업의 CEO이자, 비행기 조종사이기도 하다. 파일럿 면허를 갖고 있는 그는 한 달에 두 번은 ‘파이퍼 슈퍼컵’이라는 경비행기를 탄다. 불케는 “긴장을 푸는 좋은 방법은 진정으로 좋아하는 어떤 것에 집중하는 것이고, 그것이 내게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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