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조 증후군'에 빠진 기업, 이렇게 된다

입력 2015-12-04 15:26   수정 2015-12-04 16:24


(유하늘 디지털전략부 기자) "죽기 싫으면 받으라구요. 당신이 알아서 책임 져. 더이상 힘들게 하지 말고."

2013년 5월 3일. 유튜브에 통화 녹음 파일 하나가 올라왔다. 남양유업 본사 영업직원과 대리점주의 통화 내용이었다. 남양유업 본사 영업직원은 퉁명스런 말투로 대화를 시작하더니, 반말과 욕설까지 내뱉으며 대리점주에게 납품 받을 것을 강요한다. 2010년 녹음 당시 영업사원은 34세, 대리점주는 56세였다.

녹음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며 남양유업의 '물량 밀어내기(구매 강제)' 사건이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업계에서는 "예견된 사태였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양유업 대리점주들은 2006년부터 밀어내기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 왔다. 남양유업은 같은 해 공정위에서 물량 밀어내기를 적발당해 시정명령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밀어내기는 계속됐다. 관행적으로 굳어진 구조였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전·현직 대리점주 7명은 "회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리점에서 주문한 것보다 2∼3배 많은 양을 보내는 등 이른바 '밀어내기'를 요구했다"며 남양유업 앞에서 항의 시㎏?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언론의 관심은 높지 않았다. 물증이 없었기 때문이다.

녹취록이 돌자 양상은 달라졌다. 폭언을 한 직원이 사표를 내 수리됐지만 인터넷에는 불매운동 조짐이 보이는 등 이상기류가 보였다. 녹취록이 퍼지기 전 남양유업은 가맹점주들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네티즌에게 '적반하장'이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위기관리 측면에서 보면, 남양유업이 '갑질' 의혹을 계속 부인한건 부정적 결과를 낳았다. 남양유업은 5월 7일 '밀어내기를 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직원이 밀어내기를 사실상 시인한 내용이 담긴 2차 녹취파일이 공개되며 비난여론은 더 커졌다.

'일단 부정하고 보자'는 태도는 대중의 반감을 사는데 일조했다. 같은 달 9일 회사 차원에서 대표이사 및 임원진이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14일 검찰 조사에서는 '갑질'을 부인했다. 16일 MBC의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한 홍보전략실장이 회사의 책임을 부정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 '타조 증후군'에 빠졌던 남양유업

타조는 위험에 빠지면 모래에 머리를 파묻고 '나는 안전하다'고 믿는 습성이 있다. 이를 '타조 증후군(Ostrich Syndrome)'이라고 한다.

일부 기업은 위기상황에서 타조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비난을 피하기 위해 명백한 위기상황을 부정하는 것이다. 명성관리 전문기업 에스코토스 강함수 대표는 "남양유업 역시 위기를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다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강 대표의 자문을 받아 남양유업의 위기관리 실패 원인을 6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온라인 모니터링 부족이다. 남양유업은 문제가 된 녹취 파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확산되고 있을 때 감지하지 못했다. 모니터링 부족과 악화된 여론에의 늦은 대응은 변명에 불과하다.

둘째, 거짓말이다. 이슈 초기 밀어내기 사실에 대한 부인, 대리점주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고소 등 '거짓말'에 기반한 대응은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

사실관계를 빨리 확인하고 대리점주를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개선의 의지를 보였다면 어느 정도는 쉽게 진화되었을 것이다.

셋째, 사내 커뮤니케이션 통제 부족이다. 위기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일관된 메시지(One Voice)'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대국민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조사에서는 사건을 부인했다. 홍보전략실장이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나와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했다.

넷째, 늦은 사과다. 녹취 파일 공개 이후 5일 만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최고의사결정권자의 판단이 늦었거나, 위기에 대한 인지, 사실관계 확인 등 다양한 이유가 있으나 여론이 악화된 정점에서의 사과는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섯째, 사과 당사자의 대국민 사과 불참이다. 남양유업 창업 2세이자 최대주주인 홍원식 회장은 사과문 발표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전문경영인인 김웅 당시 대표이사가 사과문을 읽었다.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홍 회장은 사건 전후로 자사주를 대량으로 매도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김웅 전 대표이사는 이에 대해 "홍 회장이 개인적으로 은행 채무가 있었다"며 "지난달 중순부터 증권거래소를 통해 매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참고: 2013년 5월 9일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기자 회견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P3jhWTCCt4Q

여섯째, 사과 대상이 잘못됐다.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한 내용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따라서 사과를 가장 먼저 해야할 대상은 피해를 입은 대리점주이고 대국민사과는 그 다음이다. 사과문은 대리점을 사과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참고: 대국민 사과한 남양유업 "잘못된 관행 재발 막겠다", 한국경제신문 2013년 5월 9일자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50962011

일곱째, 장소 선택에 실패했다. 남양유업이 사과 기자회견을 한 장소는 서울 중구 중림동 브라운스톤 LW 컨벤션. 결혼식장으로 사용되는 장소다. 본사가 협소하면 외부 공간을 이용할 수 있지만, 사안의 중요도를 고려할 때 더욱 전략적인 장소 선택이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사실 제조업에 있어 대리점, 유통과 관련한 부당 거래는 업계에서 비일비재한 사안이다. 아마도 남양유업 사측 입장에서는 관행으로 여겼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양유업이 보여준 거짓된 태도는 국회 차원의 조사, 그리고 '갑을논란' 이라는 사회적 의제의 부상을 촉발했다.

위기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불확실성에서 발생하고 확산된다. 과거의 위기가 언론을 통해서 발생했다면 이제는 위기의 해당 주체가 부聆纛?주도적으로 고발하고 확산시키며 힘을 발휘한다. 개별 시민, 소비자의 힘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이다. 단순히 언론에 대응할 것인지, 아니면 소비자라는 직접적 이해관계자를 관리할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 오너가문 보호하려 잘못 부인...더 큰 위기 초래한 대한항공

"왜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누구 하나 사실대로 말해준 사람이 없었나?"

2014년 12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하기 전 임원들을 질책하며 한 말이다.

사실 대한항공은 항공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위기대응 시스템을 잘 갖춰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기적인 훈련서부터 매뉴얼까지 매우 세부화돼 있다. 항공기 사고 발생시 사고처리, 피해자 대응, 언론 대응까지 철저하게 진행한다.

그러나 땅콩 회항 사건은 위기관리 시스템, 커뮤니케이션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위기를 바라보는 리더십, 조직 문화의 문제점, 오너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나온 거짓말 등 구시대적 사내문화가 집약된 문제다.


대한항공 위기관리의 실패 포인트는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적절한 사과문 발표 시기를 잡는데 실패했다. 최초 보도 이후 약 15시간이 지난 2014년 12월 8일 밤 11시께가 돼서야 공식 입장이 나왔다. 여론은 이미 '재벌의 갑질' 프레임으로 굳혀진 상태였고, 사과문도 책임을 전가하는 형식으로 구성되면서 화를 더 키웠다.

둘째,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대한항공은 피해자(승무원)를 가해자로 몰았다. 사과문은 조현아 부사장을 두둔하며 승무원에게 책임을 돌렸고,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

동승한 승무원, 현장 상황을 목격한 일등석 승객 등 핵심 이해관계자와의 관계 유지에도 실패했다. 한 대한항공 임원이 일등석 승객에게 "언론 인터뷰를 하더라도 사과를 잘 받았다고 이야기 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인터뷰 보도가 있었고, 뒤늦게 "대한항공 임원이 전화해 사과 차원이라며 모형 비행기와 달력을 보내주겠다"고 말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셋째, 사과 조치의 진실성이다. 대한항공은 첫 사과 후 일주일 사이에 세 차례의 추가 사과와 보직 사퇴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반성의지는 안 보이고, 여론에 떠밀려 억지로 내놓은 대책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12월 9일 보직 사퇴를 표명했지만 부사장 직함과 등기이사 유지로 ‘무늬만 사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다음날인 10일엔 부사장직에서 물러난다고 했지만 칼 호텔네트워크, 한진관광 등 계열사 대표이사직은 유지하기로 했다. 결국 12일엔 나머지 계열사 대표직에서도 사퇴했다.

넷째, 증거 조작이다. 대한항공은 조사 대상(승무원)에게 사측에 유리하게 증언을 하도록 압력을 넣은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검찰 조사가 본격화되자 임직원들에게 회항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삭제한 사실이 밝혀졌으며, 조직적인 증거인멸과 은닉을 했다.

다섯째, 내부구성원간의 공감대 형성 실패다. 대한항공 임원진들은 내부 수습에 나섰지만 목소리를 일치시키지 못했다.

12월 16일 지창훈 대한항공 총괄사장은 사내 게시판에 "회사가 시대의 기대에 箝≠?못했다. 남 탓을 하기보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며 내부 결속을 다지는 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 조현아 부사장의 동생 조현민 전무 역시 마케팅 부서 직원에게 '반성문'이라는 이메일을 전송했다. 여기서 '회항 사태의 책임이 전 직원에게 있다'고 언급한 부분이 언론에 공개되며 책임 전가 논란이 일었다. 같은 날 조 전무는 조현아 당시 부사장에게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문자 메세지를 보낸 것이 밝혀지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위기 대응하려면 사회 변화에 민감해져야"

명성관리 전문기업 에스코토스의 강함수 대표는 "남양유업 사태는 기존 위기와 다른 속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기 전, 기업 위기는 대부분 기업과 소비자 간 관계에서 발생했다. 본사-대리점 관계와 같은 내부 사정은 노출이 잘 안 됐다. 이는 웬만하면 언론보도가 안 됐고, 따라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엔 소비자의 여론형성 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메신저 등을 통해 기업 내부 사정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이는 언론 보도를 유도하고, 정치인을 움직이게 한다. 남양유업은 정직하게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대한항공 역시 구시대적이고 경직된 사내문화 때문에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해 엇박자를 탔다는게 강 대표의 평가다. 오너 가문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 때문에 "사과를 해야 한다"는 직언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피해자와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감정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

강 대표는 "기업이 잡아떼기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시절은 지났다"면서 "위기관리 능력을 높이려면 사회·경제적 변화에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끝) /sky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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