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여대생 사라진 이대 앞…"속빈 강정 됐다고 전해라"

입력 2016-02-02 10:07   수정 2016-02-05 08:57

요우커의 명암…상권 부흥 이끌었지만 국내고객 발길 끊겨
ㄱ자 대로변만 시끌, 뒷골목엔 '점포정리·임대문의' 빈 점포




[ 김봉구 기자 ] 2일 오전 지하철 2호선 이대역에 내린 요우커(遊客: 중국인 관광객)들이 이화여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길 옆 점포들엔 요우커를 겨냥한 포스터들이 줄지어 붙었다. ‘价格(최저가)’ ‘最受(인기)’ ‘Tax Free(면세)’ 따위의 문구가 적혔다.

하지만 연인으로 보이는 이들은 상점에 들르지 않았다. 곧장 걸어 올라가 이대 정문의 배꽃(이화) 문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화(梨花)의 중국어 발음 ‘리화’가 돈이 불어난다는 뜻의 ‘리파(利發)’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중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된 곳이다.

이어 발걸음을 돌린 쪽은 경의선 신촌역 방향. 이대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이다. 역시 요우커가 주고객인 화장품 가게가 즐비하다. 이대역과 이대 정문, 경의선 신촌역을 꼭짓점 삼아 이어지는 약 500m 길이의 ㄱ자형 거리가 이대 앞을 대표하는 상권이다.


문제는 이 ‘요우커 거리’를 제외한 골목 상권을 찾는 발길이 끊겼다는 것이다. ㄱ자형 대로변을 벗어나 조금만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빈 점포가 여럿이었다. 좁은 골목길 양편으로 대여섯 군데씩 연달아 문을 닫기도 했다. 대부분 옷이나 소품, 액세서리를 파는 17㎡(5평) 내외 소규모 가게였다.

오가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고 굳게 닫힌 점포 문틈으로 깔린 전단지만 몇 장씩 보였다. 텅 빈 가게 유리창엔 더러 ‘점포 정리’ ‘임대 문의’ 같은 안내 문구가 나붙었다. 내려진 셔터에 낙서처럼 새겨진 그래피티(건물 벽면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 등으로 그리는 그림)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겼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장사해왔다는 한 옷가게 주인은 “원래 여대생들이 골목골목 가게까지 찾아오는 분위기였는데 근방이 차이나타운처럼 변하면서 손님이 뚝 떨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뒷골목 작은 가게들은 임차료 감당이 안 돼 접을 수밖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대 앞이 요우커를 상대하는 대로변 몇몇 가게만 살아남고 나머지 골목 상권은 죽어나가는 ‘속 빈 강정’으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ㄱ자 대로변을 벗어나면 비교적 번화가에 자리 잡았지만 문 닫은 점포마저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여기저기 남아 있는 오래된 간판의 수선집, 간판 조명이 꺼진 작은 미용실도 위험해보였다.


이대 앞 상권을 지탱한 힘은 여대생이었다. 1970년대 맞춤옷 전문 양장점, 1980년대 청바지 등 캐주얼 매장, 1990년대 보세의류·잡화매장·미용실에 이어 2000년대엔 화장품 브랜드가 득세했다. 늘 여대생들이 최신 트렌드를 살펴보는 ‘유행의 거리’였던 셈이다. 스타벅스 이랜드 미샤 등 각종 프랜차이즈 1호점이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그러던 게 2000년대 중반 밀리오레M, 예스APM 등 이대 앞 상권에 들어선 대형 패션쇼핑몰의 잇따른 실패로 침체에 빠졌다. 이후 요우커가 구원투수로 등장했다가 오히려 국내 소비자를 몰아내는 역효과를 내면서 몇 년새 상당한 부침을 겪었다.

‘대형 상가에 숨 막힌 이대 앞’(2010년 12월)이 ‘중국인 쇼핑 파워 잠자던 이대 상권 깨웠다’(2012년 1월)는 환호로 바뀌었다가 ‘요우커의 역설’(2015년 2월)로 싸늘하게 식기까지, 180도 달라진 뉘앙스의 보도 기사가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안승호 한국유통학회장(숭실대 교수)은 “요우커 열풍이 불자 임대료를 올리는 통에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튕겨나가면서 특색을 잃어버린 것”이라며 “개별 대응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상가 주인들이 협의체를 꾸려 임대료를 낮추고 요우커, 여대생 등 키워드를 공유해 함께 고유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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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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