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샤프

입력 2016-02-26 17:47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상표와 회사 이름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할까. 굳이 고르라면 ‘더 유명한 것’이 중요하다. 상표나 브랜드가 대형 히트를 치면 회사명을 과감히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특히 소비재 업체일수록 브랜드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제록스는 원래 1906년 ‘헬로이드 포토그래픽 컴퍼니’로 출발했다. 그런데 1959년 최초의 건식복사기인 ‘제록스 914’가 히트했다. 이 브랜드는 새로운 회사명이 됐다. 일본 카메라업체인 캐논(Canon)도 원래는 긴 일본식 이름을 사명으로 쓰고 있었다. 국제적으로 브랜드가 알려지자 읽기 쉬운 캐논으로 사명을 바꿨다.

전자상거래업체인 이베이는 1995년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옥션웹이 회사 이름이었다. 그런데 사이트와 다른 회사명을 알릴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이베이로 통일했다. 이랜드는 1980년 이화여대 앞에서 보세가게로 창업할 때만 해도 잉글랜드였다. 캐주얼 브랜드 ‘이랜드’가 히트하자 법인을 세울 때 이랜드를 상호로 정했다. 리복은 1895년 JW 포스터&손스라는 회사로 시작했지만 60년 뒤 손자가 경영을 맡을 때 새 브랜드 ‘리복’을 론칭하면서 회사 이㏊?갈아버렸다.

사람들이 브랜드를 회사명보다 잘 기억하지만 ‘호치키스’는 사람들의 이런 버릇이 오류를 빚은 경우다. 사무실 어디에나 있는 종이찍개를 나이 든 사람들은 ‘호치키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게 잘못된 일본어니 차라리 외국어 그대로 스테이플러(stapler)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호치키스는 일본어가 아니라 이 스테이플러를 발명해 백만장자가 된 미국 발명가(조지 호치키스)의 이름이다. 이 사람이 만든 회사가 ‘호치키스 컴퍼니’였는데 일본에서 이 회사 제품을 수입하면서 엉뚱하게 회사명이 더 유명해진 것이다. 일본에선 호치키스가 아니라 ‘스테뿌라’로 부른다고 한다.

상표가 너무 유명해 회사 이름이 된 대표적인 경우가 ‘샤프’다. 일본 발명가 하야카와 도쿠지가 샤프 펜슬을 개발한 것은 1915년이었다. 서양에서 ‘언제든 쓸 수 있는 샤프 펜슬’이란 브랜드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하야카와는 관동대지진 때 샤프펜슬 공장이 전소하자 특허를 팔아 회사를 정리했다. 그의 회사는 1924년 오사카에서 ‘샤프’라는 회사명으로 재출범한 이후 혁신적인 라디오와 TV를 잇달아 선보이며 세계적인 전자회사로 성장했다. 삼성전자에 반도체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던 샤프가 대만 업체에 팔리려다 우발채무 문제로 주춤하고 있다는 보도다. ‘샤프’라는 이름이나마 남게 될지.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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