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쟁 대신 '정치적 배분'하자는 사회적 경제, '공동체 유지' 명분 내세우지만 관치경제 부활일 뿐

입력 2016-03-11 17:40  

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53>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의 대안?

자본주의의 역사적 진화?
협동조합·사회적 기업 예전부터 존재
시장경제에 밀려 명맥 유지만 하던 것

정치논리 앞세운 인위적인 자원배분
한쪽에만 특혜 줘 경쟁질서 '왜곡'
결국은 간섭주의의 또다른 모습일 뿐

권혁철 <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




“사회적 경제는 기업 이익이 최우선 목표인 시장경제와 달리 사회적 가치와 목적을 우위에 두는 경제활동이다. 계나 두레가 사회적 경제라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은 현대판 사회적 경제다.”

한 미디어 매체가 전하는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의(定義)다. 인터넷에서 ‘사회적 경제’를 검색어로 입력하면 수도 없이 많은 기사와 관련 내용이 쏟아져 나온다. 거의 모두가 위에 언급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급기야 정치권도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까지 발의했다.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법안 발의의 이유는 이렇다. ‘대한민국은 초고속 성장을 이뤄 잘살게 됐다고는 하지만, 양극화가 심해졌다. 이 양극화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붕괴시킬 정도로 심각하다. 이 공동체의 붕괴를 막는 것은 시대적 과제이며,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한국 경제의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 체제 개혁은 어느 방향으로 해야 하는가? 이제까지의 패러다임인 국가의 복지, 자유시장경제의 성장으로는 부족하며,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사회적 경제가 바로 그 대안이다.’

사회적 경제가 추구한다는 이른바 ‘사회적 가치’란 ‘빈곤을 해소하는 복지, 따뜻한 일자리, 사람과 노동의 가치, 협력과 연대의 가치, 지역공동체의 복원, 그리고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선한 정신과 의지 등’을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듯 훌륭한 목적을 지닌 사회적 경제 조직들은 자생력이 없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의 골자다.

문제는 공공의 이름으로 하는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어떤 법안이나 정책의 목적이 멋지고 훌륭하다고 해서 그것의 실제 효과와 결과까지도 멋지고 훌륭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목격하고 있다. 이미 200년도 더 이전에 애덤 스미스는 “나는 공공선을 위해 사업을 하는 척하는 사람이 이뤄놓은 좋은 일을 결코 많이 알지 못한다”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지원하고 육성하겠다는 사회적 경제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 중 하나는 ‘사회적’이라는 용어 자체에 들어 있다. ‘사회적 경제’ ‘사회적 기업’ ‘사회적 가치’ 등 ‘사회적’이라는 말이 최근 들어 부쩍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하이에크는 자신의 저서 《치명적 자만》에서 ‘사회적’이라는 용어를 일컬어 ‘족제비 같은 말(weasel word)’이라고 표현했다. 족제비가 알의 겉은 멀쩡하게 남겨두고 속에 있는 내용물만 전부 빨아먹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수식하는 명사의 겉은 멀쩡한데 그 내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사회적 경제’에서 ‘경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정치’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경제논리는 사라지고 정치논리가 대신하게 된다.

이런 정황은 법안에서도 이미 파악된다. 정부가 ‘사회적 경제 발전기금’을 설치, 운영하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 기금을 운용, 관리하게 돼 있다. 게다가 대통령 소속의 사회적경제위원회, 시·도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조직하고 지역단위, 업종 및 분야 단위의 협의회를 조직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경제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자금과 조직을 장악하고 통제할 것이라는 얘기다. 결국 사회적 경제는 기껏해야 관치경제의 부활에 불과하며 관치경제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노정할 것이다.

또 사회적 경제는 자생적 질서인 시장경제가 아니라 인위적인 자원배분 방식을 선호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빈곤 해소, 양극화 해소, 따뜻한 일자리, 협력과 연대의 가치 등 사회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인간이 사회를 설계하고 조직함으로써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자들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런 구성주의적 합리주의의 백미는 단연 사회주의 이상국가 건설이었고, 70여년에 걸친 인류의 거대한 실험은 처참한 실패?귀결됐다. 이는 정부 관료를 비롯한 그 누구라도, 또 그 어떤 인위적 조직이라도 그들이 가진 정보와 지식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이런 인간의 구조적 무지를 보완해 정보와 지식이 전달되고 수집되고 가공되고 활용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시장이다. 사회적 경제는 이 시장을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과 지식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니 ‘치명적 자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경제나 사회적 협동조합 같은 것들이 새롭게 등장한 것 같지만, 사실 그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그동안 때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대안이 되기는커녕 존립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었다. 시장에서의 시스템 경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사회적 경제나 사회적 협동조합 등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의 경쟁에서 패해 그 명맥이나 겨우 유지하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사회적 경제를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역사적 진화’라고 치켜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이윤보다는 구성원들 또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경제활동을 하고, 이윤의 배분에도 자본보다는 사람과 노동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조직을 구성하고, 이 조직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당 개인과 조직의 자율적인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정부, 정치권이 나서서 이를 지원하고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부와 정치권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특정 가치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이 될 수 있는지, 시장경제의 대안?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평가하는 사람의 관점과 경험과 이해에 따라 다양하게 나뉠 수 있다.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말이다.

이럴 경우 어떤 게 맞는 것인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경쟁을 시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와 사회적 경제가 서로 경쟁하도록 하는 일이다. 하이에크가 언급했듯이 경쟁이야말로 무엇이 적합한 것인지를 발견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이 우리 사회에 적합하고 유용한 것인지는 그 경쟁의 결과가 알려줄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한쪽에는 특혜를 주고 다른 쪽에는 불이익을 주면서 이 경쟁을 왜곡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손' 통한 자발적인 협력·연대가 시장경제의 힘

사회적 경제를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는 시장경제에서는 경쟁만이 강조되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를 통해 협력과 연대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장경제를 매우 단편적이고 1차원적으로만 파악하는 시각의 소산이다.

일찍이 애덤 스미스는 시장경제에서는 상품의 공급자나 상인들이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는 점을 밝혔다. 다시 말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협력과 연대가 이뤄진다.

이런 사정은 레너드 리드가 쓴 《나는 연필입니다(I, Pencil)》를 보면 쉽고도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소책자는 나무, 아연, 구리, 흑연의 복합체로 만들어진 간단한 제품인 한 자루의 연필이 탄생하는 과정을 이야기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나무만 보더라도 그 나무를 심고 가꾸는 과정, 잘 자란 나무를 베어 통나무 상태로 철로를 통해 제재소로 운반하는 과정, 제재소에서 연필 두께의 판자로 제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들 각각의 과정에는 또 그 사람들이 일할 수 있도록 도끼와 톱 등의 도구를 만드는 사람, 그들이 작업할 때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그 식량을 생산하는 사람 등이 포함된다. 원료 중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은 수입해야 한다. 외국 및 외국인의 노동과도 협력하지 않으면 한 자루의 연필도 생산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의 대안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광범위한 시장에서의 협력과 연대를 보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눈에 보이는 협력과 연대, 누군가의 지시와 명령에 의해 이뤄지는 협력과 연대만을 본다. 그러다보니 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엄청난 협력과 연대 대신에 인위적으로 협력과 연대를 조성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협력과 ‘보이는 손’에 의해 지시와 명령을 통해 인위적으로 조성되는 협력 중 어느 것이 진짜 협력이고 연대일까.

권혁철 <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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