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타락한 천사 삼촌이 조카 악마를 가르친다

입력 2016-03-14 07:02  

(12) C.S.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정신 바짝 차리고 읽으라는 경고로 책 시작




‘나니아 연대기’ 작가가 쓴 악마의 편지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지식과 지혜를 배우고 감동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쁜 걸 가르치는 책이 있다면? 세상에 그런 책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쁜 것을 잔뜩 담은 것이 있다. 판타지 문학의 고전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C.S. 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가 바로 그 작품이다. 지옥 심연숭고부 차관인 스크루테이프 각하가 사랑하는 조카 웜우드에게 보내는 31편의 편지에 인간을 구렁텅이로 빠트릴 계략이 가득 담겨있다. 저자는 악마를 타락한 천사들이라며 선한 천사들과 본질이 아예 다른 존재가 아니라, 그 본질이 부패한 존재들이라고 소개한다.

책을 읽을 때는 가능하면 마음을 맡기고 내용에 푹 젖는 게 좋지만 이 책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악마의 유혹에 빨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장에 ‘이 편지들을 읽는 여러분은 악마가 거짓말쟁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들어있다.

70년이 지나도 식지 않는 열기

C.S.루이스는 ‘치밀하고 논리적인 정신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을 남긴 작가’로 평가받는다. 1942년, 발표하자마자 선풍을 일으킨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연극, 라디오극, 뮤지컬, 음반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재구성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연극과 뮤지컬로 제작된 바 있다. 현재 ‘나니아 연대기’를 만든 영화사에서 이 책을 영화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3년 C.S.루이스 50주기를 기념해 홍성사에서 ‘내가 써본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공모전을 개최했다. 앤드류 팔리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후속편으로 후배 악마들의 20가지 전략을 담은 ‘스크루테이프의 비밀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이 책이 오래도록 사랑받고 다양한 장르로 확대되는 이유는 악마의 대화를 통해 ‘사람들의 욕심과 잘못된 상상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크루테이프가 웜우드에게 지속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허점’을 파고들라는 것이다. 웜우드가 보낸 답장은 실제로 소개되지 않지만 스크루테이프가 쓴 편지 앞부분을 보면 조카가 어떤 답장을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스크루테이프는 간교하고 악랄하며 단수가 높다. 웜우드는 아직 모든 게 미숙하여 삼촌에게 “좀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냐?”“뜬구름 잡는 장광설만 늘어놓아 좀 실망했다”“말단 유혹자가 부서 차관한테 할 소리는 더더욱 아니지”라는 퉁바리를 듣는다. 하지만 가끔은 칭찬도 듣는다. 그 칭찬이라는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을 훼방하고 나쁜 길로 잘 유혹했다는 뜻이다.

미래의 걱정에 매달리게 하라

사람을 환자라고 부르는 악마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일까. 오늘 아무 일도 못하게 ‘염려’에 매여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지… 오로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미래의 일들에만 줄창 매달려 있도록 조처하는 거다.”

가정을 분열시키기 위한 작전도 있다.

“어머니한테는 질투심과 불안을 일으키고 환자는 그런 어머니를 점점 더 피하면서 무례하게 굴게 만든다면, 그 집안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되겠지. 씀씀이도 헤퍼지고 직장이나 어머니한테도 소홀해지게 만들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유물론에 빠지게 만들고 성적으로 타락하게 유혹하라는 지침도 내린다. “착실한 술 주정뱅이로 만들려면 침체되고 지쳐있을 때 일종의 진통제로 마시도록 밀어붙이라”는 말도 곁들이면서.

악마가 싫어하는 유형을 찾아라

선거를 앞두고 더욱 날을 세우며 싸우는 요즘 정치권을 보니 “별 열의 없이 안일한 시대에는 인간들을 잘 얼러서 더 깊이 잠들게 하는 게 우리 소임이야. 하지만 지금처럼 균형을 잃고 편 가르기 좋아하는 시대에는 불을 더 붙어야 한다”는 스크루테이프의 말이 더욱 실감난다.

사람을 타락시키는 일을 보람으로 삼는 스크루테이프는 “최고로 좋은 건 경박함이야”“괴로운 두려움이나 어리석은 자신감, 둘 다 바람직한 심리 상태지”라며 웜우드에게 계속 유혹의 팁을 준다. “적극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되지만 수동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약화되는 법”이라며 인간이 약화될 수 있도록 계속 흔들라는 독려도 잊지 않는다.

악의 교본을 성실하게 보내주었지만 웜우드가 목표로 삼았던 인간을 함락시키지 못하자 스크루테이프는 “네놈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유혹자들이 우리의 제일 가는 재앙”이라고 욕하면서도 끝내 승리할 거라고 큰소리 친다.

토마스 모어는 “악마는 놀림감이 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고 했다. 악마를 경멸하는 길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꼼꼼히 읽고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요즘 생활을 돌아보며 혹시 내가 악마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 건 아닌지,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교본이다.

이근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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