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생사의 갈림길에서도…군인들은 책을 들었다

입력 2016-06-23 18:13  

전쟁터로 간 책들

몰리굽틸 매닝 지음 /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336쪽 / 1만5000원



[ 송태형 기자 ] “무릎까지 빠지는 진창을 헤맨 이래(…), 동료 병사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던 이래로,(…) 더 이상 사람이나 사물을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열여덟 살에 입대해 2년간 전장을 돌아다니며 지옥을 겪었다는 한 미국 해병대원의 고백이 이어진다. “차가운 마음과 무뎌진 정신으로 저는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진중문고로 만난 베티 스미스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을 읽으면서 뭔가 내부에서 꿈틀거렸다고 했다. “차갑던 마음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책은 제게 웃음과 기쁨, 눈물을 가져다줬습니다. (…)눈물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제가 인간임을 증명해 줬으니까요.”

《전쟁터로 간 책들》 에 소개된 독자편지의 한 대목이다. 이 군인은 전장에서 몹쓸 병에 걸려 후송된 야전병원에서 彫?고통을 겪으면서도 “생생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분에게 심정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편지를 썼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터로 간 책들에 대한 이야기다. 끝이 없는 진창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빗물 고인 참호에서 불편하게 잠을 청해야 했던 군인들의 바지 뒷주머니와 상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진중문고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역할과 기능을 했으며, 얼마나 많이 읽히고 인기를 끌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 역사적인 맥락에서 진중문고가 미국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입체적으로 들려준다. 책의 시선으로 바라본 2차 세계대전 문화사라 할 만하다.

전장에서 책은 거의 유일한 오락과 위안거리였다. 책이 이런 기능만을 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1933년 독일 베를린 광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분서(焚書) 이벤트로 시작한다. 나치는 이때부터 연합군에 항복한 1945년 5월8일까지 하이네, 아인슈타인, 하인리히 만 등 유대인 작가와 사상가들의 책을 비롯해 1억권이 넘는 책을 불살랐다. 미국의 참전이 가시화되자 미국 사서들과 도서관협회, 출판계는 ‘책은 사상전의 무기’란 표어를 내걸고 전장에 보낼 책을 수집하는 기증 캠페인을 전개했고, 미국의 가치와 참전의 정당성을 알리는 책들을 보급했다. 두껍고 무거운 양장본을 배낭에 넣고 다닐 수 없는 최전방 병사들의 필요에 부응하고, 제작비를 절감해 보다 많은 책을 전장에 보내기 위해 진중문고가 탄생했다. 전쟁 중에 1억2300만권의 진중문고가 출간됐고, 1800만권의 기증본이 전장에 배급됐다. 나치가 파괴한 책보다 더 많은 책이 미군에 전달된 것이다.

진중문고는 전쟁 전까지 책을 거의 읽지 않았던 수많은 군인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쟁과 진중문고는 출판계와 작가, 문고에 선정된 책들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도 그런 사례다. 1925년 출간된 이 소설은 작가 생전엔 실패작으로 여겨졌다. 이 책은 진중문고로 편입된 이후 군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들이 소설에 보내는 찬사는 본국에 전해졌고, 이렇게 해서 세상에 다시 알려진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의 문학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에서 페이퍼백으로 출간된 책은 1939년 20만권에서 1943년 4000만권, 1947년 9000만권으로 증가했다. 출판시장 변방에 머물렀던 페이퍼백이 주류로 떠오르며 책 대중화에 기여했다.

책이 사람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고 나아가 인생을 변화시킨 이야기들은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책이 수많은 군인들의 삶에 위안을 준 이야기들은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독서의 가치와 효용을 새삼 일깨운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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