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노믹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입력 2016-11-13 10:24   수정 2016-11-13 10:25



(뉴욕=이심기 특파원) 45대 미 대통령선거가 치뤄지고 개표가 시작된 8일 밤 9시(현지시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 축하행사장이었던 뉴욕 맨해튼 자비츠 컨벤션센터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플로리다와 펜실베니아, 오하이오 주 등 선거의 향방을 가를 경합주(스윙스테이츠)에서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 약세를 보이며 충격적인 패배를 예고한 시간이었다. 클린턴 지지자들은 개표 진행상황을 지켜보는 게 고통스러웠던지 침울한 표정으로 하나 둘 자리를 떴다.

당시 미국서 근무하는 한국 외교공관은 두 가지 보고서를 준비했다. 다음날 아침 한국 정부에 보낼 미 차기 대통령 공약분석 보고서였다. 하나는 클린턴 후보가, 나머지는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에 대비한 보고서였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한국에 어떤 위험과 기회요인이 있는지를 세세히 분석했다. 예비내각 후보들도 물론 보고서에 포함됐다. 두 가지 보고서를 미리 작성한 이유는 개표결과를 확인한 뒤 작성할 시간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자도 보고서를 입수해 두 개의 기사를 써놓고 있었다. 현지시간 8일 밤 늦게 개표결과를 보고 기사를 쓸 경우 한국시간으로 9일 오후 마감시간을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플랜B는 트럼프 당선 기사였다. 여론조사결과 압도적막?클린턴 당선이 유력했기 때문이다.

미국 공관이 작성한 클린턴 공약분석 보고서는 작성자의 서랍에 처박혔다. 기자가 작성한 ‘힐러리 노믹스’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다음날 신문에 ‘신(新)보호무역주의 등장, 고립주의 선택한 미국…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전면 재검토’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렇다면 클린턴이 당선됐다면 달랐을까.

뉴욕 외교공관의 한 당국자는 “힐러리 노믹스는 대외무역 측면에서 트럼프노믹스와 별 반 차이가 없다”며 “오히려 트럼프가 협상이 가능한 상대라는 점에서 더 나은 상대”고 말했다. 아래는 기자가 미리 작성한 힐러리노믹스 분석 기사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트럼프노믹스와 비교를 해보는 것도 미국 경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려본다.

제목은 ‘힐러리노믹스, 오바마보다 강해진 진보색채…버핏세 도입, 기업 세제회피 차단/ 트럼프 못지 않은 보호무역주의, 한미FTA도 재검토…TPP 무산은 ‘호재’/ 신재생 에너지, 소비재 산업에 기회’라고 달았다. (아래는 기사 본문이다.)

힐러리 클린턴 당선자의 경제정책은 오바마 정부를 이어받으면서도 진보적 색채가 훨씬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상 정책 역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 비해 강도가 떨어지지만 보호무역주의 색채가 강화됐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힐러리 노믹스를 통해 재임중 10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연간 2.7%의 비교적 높은 경제 성장률이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부유층 증세와 대기업 세금회피 강화

힐러리 노믹스의 컬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분야는 세제다. 부유세 도입과 대기업 세제혜택 축소, 세금회피 차단 등이 대표적이다. 100만달러 이상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최소 세율 30%를 부과하는 이른바 버핏세 도입이 대표적이다. 연 소득 500만달러 이상 소득자에게 4%의 부유세도 부과하기로 했다.

기업에 대해서는 조세회피를 위한 해외이전을 막기 위해 법적 거주기준을 현재 지분의 25%에서 50%로 대폭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또 ‘국적포기세(exit tax)’도 부과하는 등 일자리 유추를 막겠다는 계획이다. 클린턴 후보는 유세 과정에서 “대기업과 고소득자를 위한 세제상의 허점(루프홀)을 차단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다국적 기업들이 미국에서 발생한 이익을 미국보다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로 이전할 때 받는 세제혜택도 없애기로 했다.

○보호무역주의 강화…중국과의 통상마찰 예고

클린턴 후보는 “20세기 국제무역 규범과 역할은 21세기에 다시 정립돼야 한다”며 기존 무역협정의 재검토를 주장했다. 단적인 예가 제조업 일자리 보호를 위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이다.

통상전문가들도 “클린턴 차기 정부 역시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한 강력한 대처를 명분삼아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채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약에서도 연방정부의 무역집행 관련 인력을 3배 늘리고, 대통령 직속의 수석무역집행관을 임명해 국제통상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에 강력히 대응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수천개의 국유기업을 운영하면서 엄청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며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통상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미FTA도 재검토 대상…반덤핑 보복조치 증가 전망

한미 FTA 역시 재검토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중도성향 싱크탱크인 ‘서드웨이’는 NAFTA 이후 발효된 자유무역협정중 한미FTA를 무역수지 ‘성적’을 기준으로 최하위로 뽑았다. 통상전문가들은 한미FTA중 약가 결정과정, 법률서비스 시장개방,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사용, 공정거래조사의 투명성 등을 문제삼을 것으로 분석했다.

올해 한국산 철강제품 등에 대한 4건의 반덤핑 및 상계관세 조사가 개시된데 이어 차기정부에서도 이같은 보복조치가 증가할 전망이다. 워싱턴의 한 통상전문가는 “지난해 2월 제정된 무역원활및 집행법에 따라 교역국의 환율개입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며 “원화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는 점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TPP 무산은 반사이익 기대

그나마 클린턴 당선자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 거부로 선회한 점은 한국으로선 다행이다. 클린턴 당선자는 국무장관 시절 TPP 내용에 대해 “최상 수준”이라고 지지했지만 대선 과정에서 반대로 돌아섰다. 자동차 원산지 규정 강화, 외환시자 개입 금지, 환경및 노동규제 강화 등을 앞세워 재협상 방침을 밝혔다.

TPP에 가장 적극적인 일본이 연내 비준을 통해 오마바 정부를 압박할 계획이지만 의회의 반대가 커 쉽지 않다. 클린턴의 공약대로 TPP가 무산되면 한국이 적어도 일본에 대해서는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 TPP 체결시 최대 수혜자인 일본의 대미 수출품목 중 87.4%가 즉시 관세 철폐 대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TPP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아시아 회귀’ 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재임중 지지 입장으로 다시 돌아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키 켄터 전 미 상무장관은 “미국 역사상 협상이 완료된 무역협정이 발효되지 않은 사례가 없다”고 전망했다.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시장 확대

힐러리 노믹스가 오바마 정부에 이어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과 에너지 효율성 증대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이어서 국내 연관 산업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KOTRA는 클린턴 후보의 공약 달성을 위해서는 지금의 약 7배에 달하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추가돼야 한다며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의 수요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또 대규모 경기부양과 중산층에 대한 세제혜택으로 내수 경기가 회복될 경우 한국기업의 경쟁력이 높은 자동차와 가전, IT기기, 의류 등 소비재 수출 증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클린턴 정부가 공공의료 확대를 위한 조제약 가격인하 정책을 펴면서 복제약 수입이 늘어날 경우 한국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 /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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