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궁극의 빈티지…쿠바는 보물섬이다

입력 2016-11-27 17:54   수정 2016-11-27 17:55

헤밍웨이 자취가 흑백 사진처럼 펼쳐진 곳

'Che'의 도시 산타클라라 골목엔 가냘픈 바이올린 소리가…
살사 리듬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쿠바는 스스로 진화하고 있었다
클래식카를 타고 달리며 대서양 바람과 밀회를 즐겨봐




쿠바는 아직도 미지의 설렘이 가득한 곳이다. 1960~197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 버린 듯 거리의 풍경은 낡고 고풍스럽다. 거리는 어수선하고 광장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앞부분이 길고 오래된 자동차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거리를 질주하고 울긋불긋 정열적인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 일상은 궁핍했지만 살사 리듬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춤과 노래에 열중한다. 오랫동안 유폐당했던 땅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얼굴은 밝고 여유롭다. 물보라가 넘실거리는 도로를 파란 클래식카를 타고 달리면 유카탄 반도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이 기분 좋게 살갗으로 파고드는 곳. 이곳이 바로 쿠바다.

매혹적인 땅 아바나서 들리는 노랫소리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에서 잭 스패로 선장이 누볐던 바다인 카리브해 바다를 넘으니 오랫동안 동경했던 땅 쿠바가 나타난다. 호세 마르티 공항에는 많은 사람이 북적였고,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여행자들의 모습은 아바나행 비행기에선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여행자들의 로망인 아바나의 거리는 다양한 언어들로 가득하다. ‘관타나메라’ ‘베사메무초’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는 거리에 넘쳐난다. 시간이 정지한 듯 격리됐던 신기한 여행지, 품고 있는 색상만큼이나 다양함이 넘치는 쿠바에 매혹되는데 드는 시간은 한나절이면 족하다.

쿠바는 멕시코만과 북대서양 사이에 있는 섬나라다. 본섬과 1600여개의 작은 군도로 이뤄진 카브리해에서 가장 큰 나라다. 북회귀선에 걸쳐 있어 아열대의 따뜻한 기후와 풍요로운 자연을 가지고 있다. 콜럼버스 발견 이후 스페인의 오랜 지배를 받았다. 사탕수수 농사를 위해 아프리카의 노동력이 대량 유입돼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가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정서에 미국 문화가 섞이면서 특유의 열정적이고 독특한 문화가 만들어졌다. 중남미의 다른 국가들처럼 가톨릭을 믿고 스페인어를 쓴다.

쿠바인들의 얼굴엔 1959년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킨 자신감이 묻어 있다. 비록 혁명의 결과는 결핍과 고립이었지만 반세기를 견디어온 자부심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머지않은 시기에 쿠바섬이 보물섬으로 변할 거란 느낌이 들었다. 거리 곳곳에 변화의 흐름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화려한 꽃으로 치장하고 시가를 문 여인들

쿠바 여행의 보석은 아바나다. 아바나에 도착한 첫날 수정한 상식 하나! 아바나의 상징인 말레콘이 맞닿은 바다는 카리브해가 아니었다. 대서양이었다. 카리브해는 정확히 쿠바섬의 남쪽 바다를 일컫는 말이다. 아바나란 명칭은 스페인이 처음 정착지를 조성할 때 원주민이었던 타이노족 족장의 딸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 문화 유산 도시다. 1200만 인구 중에 200만명이 모여 사는 쿠바의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자 여행의 완결지다.

아바나의 구시가지 ‘아바나 비에하’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촘촘히 깔려있다. 아바나 비에하에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산 크리스토발 데라아나 대성당’이다. 바로크 양식의 고풍스러운 성당은 중세 유럽의 성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성당 앞 광장에는 화려한 꽃으로 치장하고 두꺼운 시가를 입에 문 여인들이 몰려있다.

옛 총독 관저에 있는 아르마스 광장과 한때 아메리카 대륙에서 최대였던 수도원이 아름답게 서있는 산 프란시스코 광장, 노천카페의 흥겨운 리듬이 가득한 비에하 광장은 오랜 여행길의 여독을 잊게 한다. 산 프란시스코 대성당의 종탑은 몇 층인지 모르게 가파르게 이어진다. 종탑에 올라서니 말레콘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시선을 돌리면 멀리 구시가지의 중심인 카피톨리오가 한 장의 흑백 사진처럼 펼쳐지는 모습을 담을 수 있다.

헤밍웨이의 흔적은 거리에 남아 있고

구시가지 끝자락에 있는 ‘상인의 거리’라 불리는 메르카데레스 거리는 인파가 넘친다. 이곳은 헤밍웨이의 흔적이 잔뜩 묻어 있다.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집필하며 7년을 머물렀던 아무스문도스(AMBOS MUNDOS)호텔이 있는 오비스포 거리도 이곳에 있다. 헤밍웨이의 집인 ‘핑카 비히아’는 ‘망루농장’이라는 뜻 그대로 아바나의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이다. 집안 곳곳에는 대문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단서들이 가득하다.

정갈한 침실과 부엌 많은 예술가들이 들고 났을 거실과 너른 시내를 내려다보며 글을 쓴 흔적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헤밍웨이가 읽었을 책과 타이프라이터, 그가 사냥한 물소, 표범, 사슴의 박재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헤밍웨이의 집을 나와 다시 거리로 나서면 거리의 화가들로 가득한 프라도 거리가 나타난다. 프라도 거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거리를 닮았다. 거리 중앙에는 발레리노의 동상이 광장을 바라보고 있다. 헤밍웨이가 찾던 술집 ‘엘 플로리디타’는 여행자들로 문전성시다. 걷다가 지치면 모히토 한잔하면 된다. 누군가의 흔적을 찾는 여행자라면 아마 아바나는 제격인 도시다.

영화에도 제작돼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공연과 살사공연은 아바나 여행 시 반드시 들러보아야 할 곳이다. 원년 멤버들의 공연은 아니지만, 명성을 이어가는 공연이 여러 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공연을 보면 꼭 무대에서 춤을 춰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야 아바나가 몸으로 들어온다. 어둠이 내리는 말레콘의 석양은 아바나 여행자의 특권이다. 호사스럽게 대서양의 바람과 밀회를 즐겨야 한다.

슬픈 느낌이 묻어나는 트리니다드

카리브해가 펼쳐져 있는 트리니다드는 아바나에서 4시간 이상을 남향으로 달리면 도착한다. 트리니다드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도시와 바다가 펼쳐진다.

언덕길을 천천히 오르다보면 식민지 시절의 고도를 걸을 수 있다. 트리니다드는 정착민의 무역과 거주를 목적으로 세워진 식민지 도시였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트리니다드는 알록달록한 파스텔톤 가옥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마치 중세의 모습처럼 오래된 풍경은 20세기 모습 같은 아바나보다 적어도 한두 세기는 더 시간의 태엽을 거꾸로 돌려야 할 것 같다. 마요드 광장에는 크고 작은 규모의 거리 연주가 펼쳐진다. 센트로의 모든 길 중간에는 자갈이 듬성듬성 깔려있는데 우기에 물이 잘 빠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란다.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 올라서면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회색빛 구름은 낮고 깔려 있고, 붉은색 황토를 머금은 기와지붕은 슬프게 이어져 있다. 마요르 광장 바로 옆 계단에는 카사 델라 뮤지카라는 클럽이 있다. 스페인어로 ‘음악의 집’이라는 뜻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저녁이 되면 흥겨운 축제의 장이 펼쳐진다. 공연과 함께 클럽 앞까지 사람들이 몰려들어 대규모 살사 춤판을 벌인다.

체 게바라의 숨결 느껴지는 산타클라라

산타클라라는 체(Che)의 도시다. 쿠바의 어디를 가든 그와 마주친다. 그는 동지와 친구를 뜻하는 의미 그대로 쿠바의 체였다. 시가를 물고 웃는 베레모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냉전의 시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이 도시에 그가 잠들어 있다. 산타클라라는 아바나로 넘어가는 중간에 있는 교통의 요지다. 아바나에서 산티아고 데 쿠바로 향하는 철도의 교착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도시를 찾는 진짜 이유는 체 게바라가 해방시킨 도시이자 쿠바 혁명의 전환점을 만든 승리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산타클라라의 시가지 중심에는 정부군과 혁명군의 치열하게 전투를 했던 비달광장이 있다. 아직도 그때의 흔적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건물 사이에는 총탄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지만 주변의 풍경은 무겁지 않다. 가족과 연인, 주말을 즐기러 온 사람들의 눈부신 웃음들이 광장에 남아 있다.

골목 어디에선가 가냘픈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살포시 열린 창문 틈으로 고개를 내미니 동네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풍경이다. 얼굴에 이미 세월의 더께가 서려있는 노인은 인자한 얼굴로 연신 아이들의 틀린 부분을 지적해준다.

광장의 뒤로는 체 게바라 기념관이 있다. 체 게바라가 쿠바를 떠난 후 카스트로가 그를 기념해 만든 25m 높이의 거대한 청동상이다. 벌써 수십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체 게바라는 쿠바인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발밑에 꽃을 바치고 그의 얼굴을 진지하게 쳐다보는 눈길에는 경외감이 가득하다.

체 게바라 기념관에는 어린 시절부터 볼리비아에서 전사하기까지의 사진들이 놓여있다. 피델 카스트로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교환한 서신, 그가 즐겨 쓰던 물건 등이 고스란히 체의 삶을 복원하고 있다.

그는 쿠바에서의 영광을 뒤로 하고 볼리비아의 산악에서 게릴라로 최후를 마쳤다. 그의 드라마틱한 운명의 시작은 여행이었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그의 청년 시절 여행 이야기다. 여행은 번거로움이 주는 다른 기쁨이 있다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쿠바가 그랬다. 아직 많은 것이 부족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쿠바는 스스로 진화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거리는 이야기가 있었고, 광장은 여유가 가득했다. 시간 위를 걷는 여행지 쿠바는 급하게 시간에 쫓겨 살아온 여행자에게 발걸음을 맞추어 걷는 즐거움을 기억하게 해주었다. 쿠바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아바나에서 걷다보면 더 그랬다.

아바나=글·사진 이문성 여행작가 dhcjs7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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