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종의 '중국 인문기행' (9) 산시(陝西)-1] China와 漢 그리고 중원문명 발원지

입력 2016-12-05 17:42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인문이라는 영역에서 산시(陝西)라는 곳은 특별하다. 우선 차이나(China)라고 하는 중국의 영문 명칭, 그리고 중국의 문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漢(한)’이라고 적는 글자가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영문 명칭인 China의 바탕을 이루는 개념은 秦(진)이다. 현재 중국어로는 Qin(친)으로 읽지만 그 글자로부터 번진 것이 지금의 영문 명칭이다. 예전에 중국을 지칭할 때 썼던 支那(지나)도 그에서 비롯했다. 중국의 별칭은 퍽 많다. 원래는 적현(赤縣)과 신주(神州), 구주(九州)와 화하(華夏), 그리고 중화(中華)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중국 최초의 통일 판도를 형성했던 진시황의 진나라로 인해 지금의 영문 명칭인 China의 이름 골격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중국 역사에서 진시황의 진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그와 함께 인문의 중국을 설명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글자가 漢(한)이다. 한자(漢字)와 한문(漢文)을 비롯해 지금 중국의 주류 민족인 한족(漢族)을 얘기할 때 쓰이는 글자다. 문명으로서의 중국을 거론할 경우 이 글자는 중국의 대표적 표현에 해당한다.

중국 9개 왕조의 터전

산시는 남북으로 880㎞에 걸쳐 있는 지역이다. 남북의 종심(縱深)이 동서(東西)의 폭에 비해 훨씬 길다. 서북으로는 위구르에 이어 서역(西域)으로 이어지고, 서남으로는 쓰촨(四川), 동쪽으로는 드넓은 화베이(華北) 평원과 통하는 이른바 교통의 요지이자 전략적 요충(要衝)이다. 그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곳은 허난(河南)과 함께 중원(中原) 문명의 핵심으로 꼽힌다. 우선 중국인이 자신의 조상으로 꼽는 염제(炎帝)와 황제(黃帝)가 비록 전설이기는 하지만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울러 춘추시대 전인 주(周) 왕실을 비롯해 진나라와 한나라, 수(隋)와 당(唐) 등 9개 통일왕조가 이곳에 도읍을 열었다.

산시라는 이름은 陝(섬)이라는 평원의 서쪽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그러나 이곳 산시를 대표하는 왕조의 이름은 진(秦)이다. 따라서 산시는 보통 ‘삼진(三秦)의 땅’으로 적기도 한다. 중국의 판도를 최초로 ‘통일’로 엮은 진나라의 발원지였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시는 보통 세 군데로 나눈다. 북쪽은 산베이(陝北), 중부는 관중(關中), 남부는 산난(陝南)이다. 이 세 지역을 통칭해 부르는 이름이 바로 ‘삼진(三秦)’이다. 아울러 중부를 관통하는 거대한 산맥의 이름도 친링(秦嶺), 산시 곳곳을 적시는 하천과 그 평원을 친촨(秦川)이라고 적는다.

그렇듯 산시는 秦(진)이라는 글자를 떠나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런 진나라 왕실은 원래 서북쪽에서 진입한 ‘오랑캐’에 불과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자신의 약점을 개선하고 보완하는 개혁의 변법(變法)에 능했다. 관념과 추상보다는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국가 운영에 초점을 맞춘 정치적 노력이었다. 그 마지막 구두점을 찍은 이는 바로 진시황이다. 그에게는 매우 뛰어난 신료가 있었다. 진시황 때의 개혁을 이끌었던 이사(李斯)다.

포용적 정책으로 중국 정체성 확립

그는 진나라가 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직전 나라 경내에 들어와 살고 있던 다른 나라 사람을 쫓아내려고 했던 황제의 결정, 축객령(逐客令)에 반대한다.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을 비롯해 진나라 운영에 간여하는 외국인들을 모두 국외로 추방하는 결정이었다.

이사는 ‘간축객서(諫逐客書: 외국인 추방에 반대하는 글)’를 짓는다. 그 안에는 “태산이 높은 것은 하찮은 흙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강과 바다가 깊은 것은 작은 물길을 받아들였기 때문(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이라는 명문을 남긴다.

외부의 요소를 끌어들여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고치는 일을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진나라는 축객령을 거둬들임으로써 중국 최초 통일왕조로 우뚝 선다. 지금까지의 중국 정체성을 떠받치는 왕조로도 남았다. 그런 옛 진나라 땅 산시에서 최근 중국 당국이 한류(韓流)를 제한하기 위해 발동한 한한령(限韓令)을 돌아본다. 중국은 그를 거두지 않고 이어갈 모양이다. 옛 진나라와 지금의 China가 보이는 금도(襟度)의 차이를 살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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