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예술의 향기' 감도는 글래스고 어디를 둘러봐도 눈이 즐겁다

입력 2016-12-18 17:13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미술품 감상하다 하루 훌쩍
'건축계 이단아' 매킨토시. 여기선 잡스보다 유명하죠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를 ‘예술의 수도’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글래스고에서 시작해 세계로 뻗어나간 것이 얼마나 많은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을 비롯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찰스 레닌 매킨토시의 아르누보 양식 모두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 과거의 영광에만 머물지 않고, 고풍스러운 건축물에 예술을 입히고 공원을 가꿨다. 지금도 글래스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창조한다. 이 도시의 캐치프레이즈인 ‘사람이 글래스고를 만든다(People make Glasgow)’는 말이 허세만은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전통과 모던이 공존하는 도시
글래스고에 간다고 하자 글래스고가 영국인지 묻는 사람이 반, 스코틀랜드인지 묻는 사람이 반이었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글래스고는 영국 스코틀랜드지방 스트래스클라이드주에 있다.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약 330㎞, 클라이드 강 하구의 항만도시로 19세기 철강·조선업이 발달한 상공업 중심지였다. 설탕·목화 무역이 번성해 섬유공업이 발달하기도 했다. 좋았던 시절 재력가들은 이 도시에 빅토리아 양식 건물을 앞다퉈 지으며 부를 과시했다.

미술관 갤러리가 모세 혈관처럼 퍼져 있고, 거리 공연자(busker)들의 노랫소리가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시 차원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일궈낸 변화다. 버려진 공장지대, 조선소, 창고 등을 미술관, 대학 캠퍼스, 공연장, 레스토랑 등으로 변모시켰다.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재건하는 대신 옛 건물 안에 예술을 싹틔웠다.


글래스고 산책은 13세기에 지은 글래스고 대성당 앞에서 시작했다. 글래스고 대성당은 글래스고의 수호 성인 세인트 먼고(St. Mungo)의 이름을 따 ‘세인트 먼고 성당’으로도 불린다. 밖에서 보니 67m의 뾰족한 탑이 솟은 중후한 건물이 눈길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자 고색창연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시선을 붙들었다. 세인트 먼고가 일으킨 네 가지 기적에 얽힌 새, 나무, 종, 물고기 모양이 조각된 성당 앞 가로등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글래스고의 중심지 조지 스퀘어(Goerge Square)로 발길을 옮기자 19세기로 시간여행을 온 듯했다. 조지 스퀘어는 1888년에 완공된 르네상스 양식 시청사를 비롯해 온통 빅토리아 양식의 화려한 건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광장 모서리에는 ‘그레이엄의 법칙’을 만든 글래스고 출신 화학자 토머스 그레이엄, 근대 경찰 제도의 기초를 마련한 로버트 필, 낭만주의 소설가 윌터 스콧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 인사의 동상도 서 있다. 대로를 따라 걷자 뷰캐넌 거리가 나타났다. 글래스고 사람들은 이곳에 다 모였나 싶을 만큼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기타를 두드리며 자유롭게 노래하는 거리 음악가도 보였다.

“여기 뷰캐넌 거리에서 소키홀 거리까지가 글래스고의 명물인 스타일 마일(Style Mile)입니다. 대형 쇼핑몰과 디자이너 숍, 로열 콘서트홀 등 공연장이 다 모여 있어요. 화강암으로 포장된 아름다운 길을 1972년부터 보행자 전용 도로로 지정하고 가꾼 결과죠. 아이슬란드 사람들도 이곳까지 쇼핑 하러 온답니다.”

가이드의 설명처럼 스타일 마일에는 생기가 넘쳤다. 덩달아 발걸음도 경쾌해졌다.

매킨토시의 발자취를 찾아서

글래스고는 전 세계 건축학도들이 꼭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글래스고 출신 건축가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 1868~1928)’의 흔적을 느끼고 싶어서다.

글래스고 사람들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가우디가 있다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엔 매킨토시가 있다고 말할 정도다. 매킨토시는 18세기 건축 양식에 반기를 들고 직선적인 공간과 식물을 모티브로 한 곡선 장식의 아르누보 양식을 선보였다. 글래스고 예술학교, 라이트 하우스, 윌로티룸 등 많은 역작을 남기며 스코틀랜드에 아르누보 양식을 꽃피웠다. 아르누보 양식은 가구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유럽을 넘어 미국에서도 주목받았다. 특히 의자 등받이가 높은 ‘하이백 체어(high backed chair)’는 그의 대표 디자인으로 꼽힌다. 한마디로 스코틀랜드 건축은 매킨토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여행의 다른 말은 건축 여행 아니던가. 건축학도는 아니지만 매킨토시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했다. 그의 대표작인 글래스고 예술학교(Glasgow school of art)로 향했다. 영국 왕립건축연구소가 지난 175년간 지어진 영국 건축물 중 가장 뛰어난 건물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경사진 땅을 절묘하게 활용한 기하학적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미술학도들이 자연광 속에 작업할 수 있도록 방마다 창문 크기도 다르게 만들었다. 그 안에는 오늘도 제2의 매킨토시를 꿈꾸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을 터였다. 한편 라이트 하우스(The Light House)는 매킨토시가 글래스고 헤럴드 신문사 사옥으로 설계한 건물이다. 1999년부터는 스코틀랜드 디자인 건축센터로 탈바꿈했다. 16층 건물 전체가 전시 공간으로 매킨토시 작품 외에도 세계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 디자인 등의 전시를 볼 수 있다. 6층에는 글래스고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매킨토시가 디자인한 가구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곳은 윌로티룸(Wilow tearoom)이다. 윌로티룸은 매킨토시가 처음으로 상업적인 인테리어를 시작한 곳으로 유명하다. 간판의 서체, 장미 문양 창문, 등받이가 긴 의자, 자로 잰 듯 반듯한 직선의 천장 문양 등 100년 전 분위기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100년 전 윌로티룸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애프터눈 티세트를 주문했다. 홍차는 ‘랍상소우총(Lapsang Souchong)’을 골랐다. 19세기에 영국에 등장한 랍상소우총은 중국 푸젠성(福建省) 우이산(武夷山) 정산(正山) 지역에서 만들어진 중국 홍차 정산소종(正山小種)인데, 유럽으로 건너와 랍상소우총이 됐다. 싱글몰트 위스키처럼 진한 훈연향이 난다. 랍상소우총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대단히 인기 높은 차다.

고풍스러운 건축물 캘빈그로브 미술관

매킨토시에 이어 글래스고를 대표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미술관이다. 글래스고 현대미술관을 비롯해 크고 작은 갤러리가 많다.

그 가운데 제일 인기 있는 곳은 1901년에 문을 캘빈그로브 미술관(Kelvingrove Art Gallery and Museum)이다. 독특하게도 캘빈그로브 미술관은 글래스고대학 캠퍼스 안에 둥지를 틀고 있다. 글래스고대는 증기기관을 발병한 제임스 와트와 국부론을 쓴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를 배출한 명문대학이다. 전 영국 총리 헨리 캠벨-배너먼, 앤드루 보너로도 글래스고대를 졸업했다. 무려 1451년에 설립돼 전 세계 영어권 대학 중에서는 네 번째로 역사가 오래됐다.

캘빈그로브 미술관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고풍스러운 공간과 대조적인 현대 미술작품들이 시선을 압도했다. 스코틀랜드부터 유럽 회화를 총망라하는 등 전시 규모도 방대했다. 더 놀라운 건 스코틀랜드 화가뿐 아니라 렘브란트, 고흐, 모네, 피카소 등 세계적인 컬렉션을 자랑하는 캘빈그로브 미술관 입장료가 무료라는 점이다. 미술관을 거닐다 보니, 자꾸 유명한 화가보다 이름도 낯선 스코틀랜드 작가들의 작품 앞에 발길이 멈췄다. 스코틀랜드의 과거와 현재를 담은 그림이 마음을 건드린 탓이리라.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예술도시 글래스고의 매력에 반한 것처럼.

로몬드 호수에서 스피드 보트를

글래스고의 또 다른 별명은 ‘그린 시티’다. 도시 안에 공원이 20개가 넘는 데다 중심부에서 약 20㎞ 떨어진 로몬드 호수 공원도 글래스고에 속한다. 로몬드 호수 공원은 ‘스코틀랜드 호수의 여왕’이라 불리는 로몬드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국립공원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호수 위로는 고성(古城)을 품은 섬이 떠 있고, 연안을 따라 작은 마을이 점점이 이어진다. 호수 주변의 모습이 아름다워 ‘스코틀랜드 호수의 여왕’이란 애칭을 얻었다.

호숫가 여러 마을 중 ‘러스(Luss)’를 찾았다. 천천히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지만 ‘동화의 마을’이라 불릴 만큼 예쁜 마을이다. 마을 초입의 로흐 로몬드 암스 호텔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따라 걷자, 꽃과 나무로 화사하게 꾸민 집과 상점들이 나타났다. 지붕색이 같은 단층집이 늘어선 모습이 동화의 마을 같았다. 길 끝에는 작은 선착장이 눈에 띄었다. 아침 나절의 호숫가는 어디선가 날아온 갈매기가 물장난을 치며 지저귀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했다. 찰랑이는 호수 옆 교회와 호수로 흘러드는 개울가 산책로도 운치를 더했다.

로몬드 호수는 스피드 보트, 카누, 윈드서핑, 낚시 등 레포츠를 즐기기 좋아 수상 스포츠의 천국이라고도 불린다. 글래스고 사람들은 로몬드 호숫가의 낭만을 누리기 좋은 방법으로 스피드 보트를 꼽는다. 보트를 타면 호수 위 작은 섬들을 감상하기 좋기 때문이다. 현지인의 강력한 추천에 따라 호수 남동쪽에 위치한 작은 가족 경영 농장 ‘포트넬란 팜(Portnellan Farm)’을 찾았다. 포트넬란 팜은 유기농 소를 키우는 농장으로 각종 수상 스포츠와 농장 투어, 팜 스테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평소 백파이프 연주를 즐긴다는 농장주인 스콧 씨는 호수를 배경 삼아 유유자적 풀을 뜯는 소떼를 보여줬다. 소가 풀을 뜯는 소리마저 감미롭게 들리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소 구경도 좋지만, 농장 투어의 백미는 스피드 보트다. 로몬드 호수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사이로 스콧 씨의 아들 크리스가 모는 스피드 보트를 타고 질주하는데, 보트 위에서 감상하는 호수 풍경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잠시 인치머린 섬(Inchmurrin Is.)에 내려 아담한 카페에 들렀다.

인상 좋은 주인장이 애프터눈 티를 내왔다. 윌로티룸의 애프터눈 티와는 달리 소박했지만 따끈한 빵과 차가 달콤했다. 다시 보트를 타고 돌아가는 길, 어디선가 백파이프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스콧 씨가 선착장에 서서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을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선 졸업식에 부르는 ‘석별의 정’으로 익숙한 올드 랭 사인은 원래 스코틀랜드 민요다. 노래 가사처럼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친구와 작별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여행자를 위해 정성껏 연주를 하는 스콧 씨를 향해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다시 스코틀랜드에 와도 글래스고와 로몬드 호수를 찾아오리라 다짐하며.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여행정보

아직 인천에서 글래스고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영국 런던을 경유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인천~런던 노선에 보잉 787 드림라이너를 투입한 영국항공(britishairways.com)을 이용하면 장거리 비행이 편안해진다. 공용어는 영어지만 스코틀랜드 액센트가 강한 편이다. 통화는 파운드, 전압은 120V를 쓴다. 참고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절약정신이 강하기로 유명해 호텔 콘센트마다 전압 차단 스위치를 꺼 놓는다. 휴대폰, 카메라 충전 시 스위치를 켜고 플러그를 꽂았는지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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