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Success Story] 문래동 2세 기업인들, 저녁마다 '스페이스XX'로 모이는 까닭은…

입력 2016-12-29 16:06  

김낙훈의 현장속으로

ATM상상

소재연기계·경성기계·태성기공 등 문래동 기업 2세 경영인 동아리
'기술+예술' 접목 신제품 개발

내수·수출 부진에 일감 줄자 "우리만의 제품 만들자" 의기투합
문래동 찾는 예술인들과도 교감

"아버지가 일군 기업에 한동안 정을 못붙였지만 지금은 애착"



[ 김낙훈 기자 ] 서울 문래동은 금속가공 업체가 몰려 있는 곳이다. 대개 종업원 2~5명을 둔 소기업이다. 이들 가운데 2세 경영인도 함께 일하고 있다. 이들은 기존 부친 세대와는 사고방식이 다르다. 단순한 금속가공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제품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울 영등포역에서 신도림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영등포초등학교가 나온다. 이 학교 맞은편 허름한 건물에 ‘스페이스엑스엑스(SpaceXX)’가 있다.

저녁이 되면 이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안성모 재연기계 팀장(36), 김성회 경성기계 팀장(33), 천종철 알티알테크 팀장(34), 김태성 태성기공 팀장(31)이다. 이들은 최두수 스페이스엑스엑스 대표(44)와 머리를 맞대고 신제품 개발에 몰두한다.

문래동 2세 경영인 동아리인 ‘ATM상상소’ 회원들이다. 최 대표를 제외한 네 명은 모두 2세 경영인이다. 대개 이 지역에서 30년 정도 사업을 해온 부친의 뒤를 이어 가업승계 절차를 밟고 있다. 재연기계는 스크루 전문업체, 경성기계는 전자파차폐기와 에어컨부품 제조업체, 알티알테크는 자동차부품과 LED부품 제조업체, 태성기공은 기계부품과 황동제품 생산업체다. 이들이 퇴근 후 틈나는 대로 모이는 것은 기술과 예술이 접목된 신제품 개발을 위한 것이다.

이들은 2015년 상반기부터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 안성모 팀장은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 돌파구 중 하나가 ‘기술과 예술의 만남’이라고 본 것이다. 뜻이 맞는 기업인들과 함께 ‘ATM상상소’라는 동아리를 발족시켰다. ‘아트(A)’와 ‘테크놀로지(T)’, 그리고 ‘매직(M)’이라는 영어단어 첫머리 글자 합성어다. 상상소는 ‘상상하는 장소’라는 의미다. M은 문래, 머신, 메탈, 매뉴팩처링이라는 다양한 의미도 담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기술과 아이디어 디자인 능력을 결합한 컬래버레이션 제품 개발에 나섰다. 그로부터 1년 반. 10여종의 제품을 탄생시켰다. 금속제 팽이, 필기구, 볼트·너트를 활용한 장신구, 치매방지용 블록놀이, 자전거 실내거치대 등이다. 모두 금속을 소재로 한 것이다.

기존에 부친 세대가 해온 선반 밀링 프레스 표면처리 등의 임가공 작업에서 한 걸음 나아가 ‘우리만의 제품’을 개발해보자는 생각에서 내놓은 것이다. 임가공은 대기업이나 중견기업 발주가 없으면 쉬어야 하는 작업이다. 대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갈수록 일감이 줄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도 있다. 내수 부진에 수출 감소까지 겹치니 전국 어디서나 일감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일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때마침 수년 전부터 문래동에는 예술인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쇠를 소재로 한 설치미술, 낡은 공장 밀집 지역이라는 독특한 풍경 속에서 전시회를 추진하는 사진작가, 금속을 바탕으로 공공미술을 추진하는 그룹 등 다양한 예술인이 모여들었다. 시설은 낡았지만 임차료가 저렴했고 2호선 문래역이 있어 교통도 편리했다. 공장이 떠나 빈 곳에 둥지를 튼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최두수 스페이스엑스엑스 대표다. 최 대표는 서울시립대를 거쳐 영국 첼시대에서 디자인과 설치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은 예술인이다. 예술과 생산현장 접목을 추구하기 위해 4년 전 문래동에 둥지를 틀었다. 최 대표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인으로 꼽히는 엘론 머스크 테슬라 대표가 우주왕복 여행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스페이스X’로 명명한 것에 자극받아 ‘스페이스XX’로 이름지었다”며 “기업인과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며 혁신적인 디자인 제품을 개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공동으로 개발한 제품 중 금속제 팽이는 직경 20㎜ 정도의 금속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것이다. 직경 300㎜의 팽이판 위에서 누가 오래 팽이를 돌리는지 게임을 할 수 있는 제품이다. 무게 중심이 중앙에 정확하게 위치해야 하고 좌우대칭을 이뤄야 한다. 문래동의 정밀가공 기술을 보여줄 수 있는 제품이다.

최 대표는 “이 제품은 서울시립미술관 ‘미술창고’에 전시될 정도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고 교육용 등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교육용 팽이는 팽이 안에 물감을 넣은 뒤 도화지 위에서 돌리면 물감을 분사하며 추상화 같은 그림이 그려질 수 있도록 고안한 제품이다. 이같이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팔릴 수 있는 상품이다.

필기구, 볼트·너트를 활용한 장신구, 치매방지용 블록놀이, 자전거 실내거치대도 마찬가지다. 자전거 실내거치대는 고가 자전거를 옥외에 놔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집안에 두기도 마땅치 않은데, 벽에 거치대를 설치하면 간편하게 자전거를 벽에 걸 수 있는 장치다. 볼트·너트를 활용한 장신구는 볼트와 너트를 가공해 만든 팔찌 등의 장신구다. 금이나 은 같은 보석류는 아니지만 독특한 디자인이어서 ‘튀는 장식’을 좋아하는 사람을 겨냥한 제품이다. 치매방지용 블록놀이는 고령화사회를 맞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알루미늄으로 육면체를 만든 뒤 여기에 볼트 너트로 갖가지 모양을 고정시킨 뒤 이를 조작해 치매를 막는 놀이기구다.

이들은 중요무형문화재인 장철영 나전장과 공동으로 금속제 팽이에 나전칠기를 입히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직경 20㎜ 정도의 팽이와 직경 120㎜의 팽이판에 나전칠기를 입히는 작업이다. 이와는 별도로 직경 800㎜의 대형 팽이판을 만들어 문래근린공원에 설치하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주민과 더불어 즐기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부친과 단둘이서 재연기계를 이끌고 있는 안 팀장은 “한동안 문래동에 마음을 붙이지 못해 갈등했지만 예술과 결합된 제품을 개발하면서 이 지역에 애정이 생겼다”고 말했다. 문래동의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한 것이다.

기술과 디자인 예술의 결합은 수많은 가치를 창조해낸다. 알레시는 주전자 등 생활용품 디자인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으며 명품오디오로 꼽히는 뱅앤올룹슨은 오디오 기술과 빼어난 디자인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알바 알토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배출한 북유럽의 디자인 강국 핀란드에는 ‘피스카스빌리지’가 있다.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이곳엔 120여명의 디자이너 등 예술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전체 주민의 약 20%에 해당하는 인원이다. 피스카스라는 핀란드 최고(最古)의 기업이 공장을 이전하면서 이를 예술인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하고 이곳에서 나오는 디자인을 구입하는 등 기업과 예술의 협업 모델이 바로 ‘피스카스 모델’이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피스카스그룹은 최근 수년 새 세계적인 도자기업체인 로열달톤 웨지우드 로열코펜하겐 등의 브랜드를 인수하기도 했다. 문래동이 한국의 피스카스빌리지로 도약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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