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용 책' 고가에 파는 얌체 출판사

입력 2017-01-05 18:24   수정 2017-01-06 06:10

대학생 알바로 고용 '희망도서 신청' 유도

"책 한 권 팔리면 학생에 2만~3만원 지급"

보고서 짜깁기 등 내용 부실
'스마트그리드 동향' 30만원



[ 김동현/성수영 기자 ] 연세대에 재학 중인 심모씨(28)는 학교 도서관에서 리포트 자료를 찾다가 이상한 책을 발견했다.《차세대 지능형 전력망 스마트그리드 동향 및 전망》이란 제목의 363쪽짜리 책 가격이 30만원에 달했다. 고가인데도 인쇄 상태는 엉망이었다. 컬러 사진 한 장 없는 데다 저자 정보도 ‘A출판사 편집부’가 전부였다.


‘짜깁기 책’이 수십만원짜리 전문 서적으로 둔갑해 공공 도서관에 버젓이 꽂혀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출판사가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학생 희망도서’를 신청하면 도서관은 이를 구입하는 방식이다. 대학 도서관에까지 이 같은 ‘불량 도서’가 퍼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서관 측의 ‘묻지마 구입’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장은 “영세 출판사들이 불황에 못 이겨 도서관 납품용 저질 책을 양산하고 있다”며 “2014년부터 공공 저작물을 상업적으로 쓸 수 있게 저작권법이 개정되면서 정부 보고서를 베껴 민간 출판사가 책으로 출간하는 일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도서관을 상대로 한 이 같은 ‘사기극’은 출판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출판되는 모든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 두 권이 들어가는데 한 권에 5000만원을 책정한 출판사도 있었다”며 “악덕업자들이 좋은 책을 위해 써야 할 정부 및 대학 예산을 가로채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도서관을 약 1시간 동안 살펴봤더니 정가 30만원짜리 책이 23권 눈에 띄었다. 빅데이터·스마트TV·사물인터넷 등 최신 트렌드를 다룬 것으로 주로 제목은 ‘연구보고서’ 형식이 다수였다. 기존 보고서 등을 베낀 책이 많았다. 1000쪽이 넘는 컬러판 전문 수입 의학책도 평균 10만~20만원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바가지’인 셈이다.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 스마트그리드 동향 및 전망》만 해도 302~310쪽 전체가 수출입은행이 2012년에 낸 ‘에너지원별 전력 수요 전망 및 시사점’ 보고서 그대로다. 스마트그리드를 전공한 연세대의 한 교수는 “어떤 레퍼런스(출처 표시)도 없어 짜깁기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불량 도서의 도서관 납품은 주로 학생들의 희망도서 신청을 통해 이뤄진다. 출판사들은 ‘도서 구입 신청 아르바이트’를 버젓이 공고할 정도다.

구직 사이트를 통해 아르바이트 문의를 했던 대학생 황모씨(25)는 “도서관 홈페이지에 구입을 신청하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면 보수를 입금하겠다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도서관에서 전화가 오면 관련 산업에 관심이 있어서 신청했다고 말하면 된다’ 등 세부 지침도 있었다”고 했다. 책 한 권이 팔리면 2만~3만원가량을 학생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동현/성수영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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