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개인적인 부고 기사

입력 2017-02-02 22:18  



(박신영 금융부 기자) 2009년 3월, 처음 기획재정부를 담당했을 때 느꼈던 긴장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차도 어렸고, 부끄럽지만 경제를 잘 알지도 않았습니다. 기재부 공무원을 만나는 것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사무실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였던 적도 많았습니다. 정책에 대한 질문을 쪽지에 적어놓고 되새기기도 했고, 때로는 긴장된 분위기를 풀 농담까지 미리 연습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국제금융과 관련해선 더 긴장을 했습니다. 용어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센 파고가 우리나라를 막 쓸고 지나간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국제금융국장이 ‘CDS( Credit Default Swap·신용부도스와프)프리미엄’에 대해 선배 기자와 얘기를 나누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주니어 기자 입장에선 워낙 전문적인 업무를 하던 그 국장에게 선뜻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두번째 방문 땐 의외로 소탈한 모습으로 따뜻하게 대해줬습니다. 특별히 잘해줬다기 보다는 정책에 대한 질문을 할 때 아무리 질문 수준이 유치해도 성심성의껏 답변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는 외환보유액 역사에 대한 기사 쓰기가 어려워 찾아가 하소연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직접 외환보유액의 역대 수치와 관련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그 분이 저에게만 잘해줬던 것은 아닙니다. 특유의 겸손함과 털털함, 소탈한 성격으로 선후배 공무원들과 기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기자들 표현으로 “딱히 큰 기사꺼리를 주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지요.

유난히 운동을 좋아해서 아침 일찍 사무실에 가보면 땀에 흠뻑 젖은 채 출근하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나름 기재부 안에선 실력있는 축구선수였습니다. 기재부 체육대회에서 계주 결승에 진출했을 때 중년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날렵하게 달리던 모습도 생각이 나네요. 기재부에서 퇴임한 뒤 국제금융센터장으로 있을 때는 점심시간에 명동, 을지로 인근에서 자주 마주쳤습니다. 버스나 택시보다는 걷기를 좋아했던 그의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2일 저녁 그분으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본인상’이라고 시작하는 문자였습니다. 그를 아는 지인은 2년간 암으로 투병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취재원과 기자와의 관계가 이렇듯 가깝고도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공무원들의 꿈인 ‘장관’의 자리에 오른 것도 아니었고, 다른 누구처럼 국회 진출을 시도하지도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업무엔 충실했지만 화려하진 않은 공무원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일했던 분들의 솔직한 평가가 어떤지는 알수 없으나, 기자의 시선에서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의 부고가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그의 빈소는 장관과 국회의원을 모두 거친 어느 명망있는 분의 빈소와 같은 병원에 차려졌습니다. 가시는 날 마저 평소 모습처럼 조용히 떠나신 것같습니다. 그 분은 57세에 타계한 김익주 전 국제금융센터장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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