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서 한학자 아들로 태어나 '굽히느니 부러지겠다' 인생 모토
검사 시절부터 비주류였지만 당대표·도지사…이젠 대선후보
[ 홍영식 기자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는 “열등감과 자신감이 나를 키웠다”고 말하곤 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삶의 여정에서 상승작용을 일으켰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난한 ‘촌놈’ 출신은 열등감의 근원이다. 열등감은 그에게 중심으로 가려는 자극제가 됐다. ‘빽’ 하나 없이 강자들과 무모한 듯한 싸움을 벌이면서 대선후보로 성장한 이면엔 자신감이 버티고 있다.
그는 1954년 경남 창녕의 벽촌에서 가난한 한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굶기를 밥 먹듯 했다고 한다. 자서전 《변방》에는 유년 시절 겪은 배고픔과 가난에 대한 내용이 소상하게 담겨 있다.
가난 때문에 명문 고교 대신 장학금을 주는 학교를 택했다.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희망했다가 아버지가 억울하게 무고를 당하는 모습을 보며 진로를 바꿔 1972년 고려대 법대(행정학과)에 들어갔다. 시골에 살던 아버지가 남이 훔친 비료를 취득한 혐의로 누명을 쓴 것이다.
홍 후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어머니다. 그는 31일 후보 수락연설에서 “어머니는 문맹이다. 무지랭이처럼 살았어도 가족을 사랑하고 헌신적으로 살았다”며 “인생의 멘토가 엄마다. 인생의 마지막 꿈이 내가 대통령이 돼 엄마처럼 착한 사람 한번 잘 살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 국민은행 서울 안암동지점에 돈을 찾으러 갔다가 부인 이순삼 씨를 만나 사귀었다. 처가에서 ‘빼빼 말랐다’며 반대가 심했지만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이씨는 전북 부안이 고향이다. 군산에서 여상을 졸업한 뒤 은행에 취직했다. 홍 후보는 공처가로 유명하다. 저녁 술자리가 있어도 오후 10시까지는 집에 들어가는 게 원칙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유목민으로 떠돌아다니며 살다가 아내를 만나 처음으로 정착민이 된 것 같은 안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홍 후보는 검사 시절부터 룸살롱 등 유흥주점에 가는 것을 피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수사 대상인 조직폭력배들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한 ‘자기 관리’ 차원이었다. 그는 검사 때 광주 등지에서 ‘조폭 저승사자’로 불렸다.
그의 인생 모토는 ‘굽히느니 부러지겠다’는 것이다. 별명인 ‘도꼬다이(일본어로 홀로 대적한다는 뜻)’ ‘저격수’ 등과 일맥상통한다. 검사와 정치인 시절 그는 늘 비주류였다. 검사 생활 11년간 세(勢)가 없었다. 이 때문에 요직으로 불리는 대검찰청 중수부나 공안부 문턱도 못 갔다. 위에서 알아듣게 얘기하면 적당히 넘어가야 할 사건들을 끝까지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1993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 슬롯머신업계 비리 사건 수사를 하면서 6공화국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전 의원을 구속시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모래시계 검사’가 된 것은 그 덕분이다. 그는 “윗선에서 온갖 압력이 있었지만 더 나빠질 것, 버릴 것이 없어서 겁날 것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비주류였지만 한나라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잇따라 역임했다.
홍 후보는 ‘독설과 저격’ 이미지로 비치는 데 대해 불만이 많다. 그는 “오명을 덮어쓰고라도 조직을 위해 일했다. 진정한 저격수란 자신이 항상 저격 대상으로 총 맞을 각오를 가져야 한다는 자세로 임해 왔다”고 강조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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