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더 지능적이었다. 금감원이 금융회사로부터 약관 신고를 받은 경우 10영업일 이내에 신고수리하거나 공정위와 협의를 거쳐 변경명령해야 한다. 당국의 의도적인 처리기간 장기화를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금감원은 교묘하게 피해나갔다. 법적 근거도 없는 반송·철회 권고제도라는 것을 도입해 약관을 반송해 철회시킨 다음 업체가 다시 신고를 하면 심사기간이 새롭게 시작되도록 운영했다. 금융회사 대상으로 ‘뺑뺑이’를 시키는 놀음을 한 것이다. 지난해 처리한 758건 중 이런 식으로 반송·철회시킨 것만 396건에 달했다. 당국이 약관으로 기업을 괴롭히는 정도가 통신분야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이게 한국 금융의 현실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행정규제를 대거 만든 뒤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외부의 규제개선 의견을 차단해 왔다는 것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숨은 규제, 보이지 않는 규제를 없애겠다던 금융당국이 되레 ‘그림자 규제’를 양산해 왔다. 이런 금융당국에 급변하는 금융환경, 글로벌 흐름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해 달라는 요구는 애초부터 무리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한국에만 오면 핀테크, 인터넷전문은행 등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밖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평가할 때마다 금융은 노동과 더불어 최하위권 단골이다. 전체 경쟁력을 갉아먹는 주범이다. 개혁의지도 없는 금융당국의 ‘껍데기 규제개혁’을 지켜보는 것도 이젠 역겹다. 오죽하면 금융규제 개혁 이전에 금융당국부터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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