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명분 쌓기에 급급한 국민연금

입력 2017-04-12 17:35   수정 2017-04-13 13:36

정지은 금융부 기자 jeong@hankyung.com


[ 정지은 기자 ] “전주까지 찾아갔지만 협상 시간은 고작 7분이었습니다.”

정용석 산업은행 부행장은 축 처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 11일 전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를 다녀오는 길에 기자와 전화통화를 하면서다. 정 부행장은 이날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사채권자인 국민연금에 정부와 산은이 제시한 채무재조정안에 대한 동의를 구하려고 이곳을 찾았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안을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최종 반대하면 대우조선은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에 들어간다. 물론 국민연금이 동의를 주저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정 기업을 살리기 위해 손실을 떠안는 상황이 우려된다는 게 국민연금의 얘기다.

하지만 이미 손실은 피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의 분식회계에 속은 회사채 투자자다. 엄밀히 말하면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은 계속 손실이 걱정된다며 대응책을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방어논리를 쌓는 데 급급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정 부행장의 전주행만 해도 그렇다. 국민연금은 지난 10일 밤 산은 측에 “정 부행장이 직접 전주에 내려와달라”며 협상을 제안했다. 정 부행장은 바로 다음날 오전 11시 서울역에서 전주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이날 오전 11시에 돌연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사실상 채무재조정에 반대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국민연금은 정 부행장을 만나서도 ‘직접 실사하고 싶다’는 일방적인 입장만 전달했다. 정 부행장이 전주까지 가는 데엔 2시간가량 걸렸지만 협상 시간은 7분에 불과했다. 정 부행장은 “이것저것 설명 자료를 잔뜩 챙겨갔는데 그쪽에선 전혀 들을 생각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기권이나 반대에 앞서 ‘고민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해 협상을 요청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향후 감사원이나 국회 등에서 제기될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데만 몰입돼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정지은 금융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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