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모든 것은 실크로드를 통했다…심지어 재앙마저도

입력 2017-05-25 20:19   수정 2017-05-26 05:18

실크로드 세계사 /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1024쪽 / 5만3000원



[ 서화동 기자 ]
근동(近東), 중동(中東), 극동(極東)은 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용어다. 유럽의 관점에서 자기들과의 거리에 따라 가까운 지역은 근동, 동아시아는 극동, 둘 사이의 중간은 중동이다. 15세기 말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 이후 세계를 좌우하게 된 서유럽은 세계사의 주요 흐름을 유럽 중심으로 단순화했다.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시작된 문명사가 기독교가 지배한 유럽-르네상스-계몽주의 시대-민주주의와 산업혁명-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세계로 이어졌다는 식이다.

《실크로드 세계사》의 저자는 이런 유럽 중심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역사가이자 영국 옥스퍼드대 비잔틴연구센터 소장인 피터 프랭코판은 ‘서유럽의 승리’라는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으로 세계사를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유럽이 패권을 장악한 기간은 500년 남짓이다. 그 전까지 세계의 중심은 실크로드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실크로드가 형성된 것은 기원전 119년 한나라가 중국 내륙과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둔황을 연결하는 길이 900㎞의 하서주랑을 차지하면서다. 이에 따라 동방과 서방의 중간 지점, 대략 지중해 동해안과 흑해 연안에서 히말라야 산맥까지 펼쳐진 실크로드 지역은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해왔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실크로드 지역이 ‘아시아의 등뼈’라며 고대 상업제국 페르시아와 로마제국으로부터 현대 중국의 신(新)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역사를 실크로드 중심으로 풀어낸다. 초기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고대 종교의 생성과 확산 및 상호 경쟁과 교류, 부유한 도시국가와 중앙아시아 왕조의 탄생, 십자군 전쟁, 몽골의 세계 정복과 페스트의 확산, 콜럼버스 이후 서유럽이 세계를 주도하면서 식민지를 둘러싼 유럽국가 및 러시아의 충돌, 중동의 석유 독점을 위한 이합집산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등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현재의 모습으로 과거를 재단하기 쉽다. 하지만 실크로드 지역 국가들의 현재 경제·문화·인권 수준이 낮다고 해서 예전에도 그랬을 거라고 보면 오산이다. 거의 5000년 전부터 이 지역에 하라파, 모헨조다로 같은 거대도시들이 건설됐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같은 거대 종교들이 여기서 탄생했다. 인도·유럽어족, 셈어족, 중국·티베트어족, 알타이어족 등 주요 언어집단들도 이 지역에서 형성돼 경쟁했다. 사방팔방으로 뻗은 길은 순례자와 전사, 유목민과 장사꾼들의 여행길이자 죽음과 폭력, 질병과 재앙을 실어나르는 통로이기도 했다.

이슬람 세계가 형성된 이후 바그다드는 풍요와 왕권의 중심지이자 국제도시였다. 781년 칼리프의 아들 하룬 알라시드의 결혼식이 열렸을 때였다. 신랑은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은이 가득 담긴 금 쟁반과 금이 가득 담긴 은 쟁반을 선물로 돌렸다. 809년 그가 죽었을 때 그의 금고에는 4000개의 터번과 1000개의 값비싼 자기, 엄청난 양의 금은보석과 15만개의 방패, 수천 켤레의 장화가 있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광대하고 생산성이 높고 화폐경제가 발달한 이슬람제국이 거둔 막대한 조세수입 덕분이었다.

유럽에까지 미친 몽골의 세계 정복도 실크로드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몽골의 유럽 정복은 교역과 문화에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라 질병까지 옮겨왔다. 유럽과 나머지 세계를 연결해줬던 교역로는 14세기 중반 중앙아시아의 스텝지대에서 발생한 페스트를 유럽 전역에 전파하는 치명적 간선도로가 되고 말았다.

저자는 근현대사를 전체 분량의 3분의 1로 다룰 만큼 실크로드의 현재적 의미를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는 실크로드는 둔황을 거쳐 동로마에 이르는 육상의 특정 교통로를 넘어 교류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를 의미한다. 서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비판하면서도 15세기 이후에는 서유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이유다. 특히 석유, 석탄, 광물 등 천연자원을 중심으로 이 지역에 쏠리고 있는 각국의 관심에 주목한다. 저자는 “우리가 바라봐야 할 곳은 진짜 ‘가운데 땅’인 ‘세계의 중심’”이라며 “아시아의 등뼈 곳곳에서 네트워크와 연결망들이 새로 짜이고 있다”고 강조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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