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10년을 내다보는 경제정책을

입력 2017-06-11 17:01  

더이상 '5년의 시행착오' 되풀이할 수 없어
경제원리를 지키고 글로벌 표준을 따르며
경제주체들이 스스로 이익을 좇게 해야



이번 달로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지 만 10년이 된다. 이 법은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증가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권익과 근로조건을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당시 필자는 이 법안이 고용불안과 실업을 더 증대시킬 것이라는 반론을 제기했다가 일부 단체로부터 곤혹스러운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경제논리로 보면 이 법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동시장을 경직시켜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구조적 속성이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근로자는 2년마다 옮겨다니고, 기업은 신규 채용을 주저하게 했으니, 당연히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실업이 크게 증가하지 않았는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외부파견 등 신분에 따른 갈등만 첨예하게 만들었다. 당초 목적을 일부 달성한 측면도 있겠지만, 오죽하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신정부의 첫 조치로 비정규직의 정규화를 챙기겠는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많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참신한 정책도 있지만, 어제까지 추진된 정책을 완전히 뒤집는 것도 있다. 정책을 시행하는 공무원은 영혼이 없어서 다행이라지만, 국민들은 때로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다수의 국민이 지지한 정치철학과 이념에 적합한 정책이 도입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적어도 경제정책만은 백년대계(百年大計)는 차치하고 십년소계(十年小計)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10년을 내다보는 혜안도 없다면 어떻게 ‘나라다운 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10년을 바라보는 경제정책은 최소한 다음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는 경제 원리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경제는 절대로 법이나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법과 명령으로 경제를 움직일 수 있다면 세계는 지금 모두 사회주의의 그늘 아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경제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움직이는 것인데, 마음을 거스르는 명령이 어떻게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겠는가. 경제 원리는 자연과학처럼 실험실에서 발견된 진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태에서 발견한 공통적 현상을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경제논리에 반하는 정책은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스스로 움직이게 할 수 없다.

둘째는 지속가능성이다. 법과 명령은 때로 기업과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모래 속에 머리를 박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 펭귄처럼, 경제 주체들을 꼼짝 못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정책이 어떻게 10년을 버티겠는가. 경제주체에게 동인(動因)을 부여하고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좇아 정책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야 지속가능하다. 그런 유인(誘因)을 담지 못한 경제정책은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변칙과 부작용을 유발하고,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엉뚱한 풍선효과만 범람하게 할 따름이다.

셋째, 글로벌 표준을 따라야 한다. 국가마다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 특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는 세계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므로, 법규나 정책도 국제적 규범에 맞아야 한다.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우리만 경제적 효율을 도외시하는 경직된 규제정책을 시행한다면 어떻게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숱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세계적 규범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 불필요한 낭비적 답습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긴급한 경제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단기 처방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정책은 한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형평과 분배를 개선하는 정책도 경제보다 사회정책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경제는 국부(國富)를 늘리고, 모두를 잘살게 하자는 것이므로, 특별한 이념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행여 인기에 연연해 5년짜리 경제정책만 양산한다면 나라는 온통 5년의 시행착오만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비록 인기를 거슬러도, 경제만이라도 최소한 10년을 내다보며 국민을 설득하고 국가를 이끌어나가야 한다. 일자리 창출과 4차 산업혁명, 비정규직 등 새롭게 도입되는 모든 경제정책을 10년 소계의 조건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자.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전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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