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free'라는 말의 이면

입력 2017-07-04 19:38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자유로운’을 뜻하는 영어 ‘free’는 독일어 ‘frei’에서 파생됐다고 한다. 어원을 더 찾아보면 ‘사랑하다’라는 뜻의 인도게르만어 ‘fri’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friend)라는 말도 같은 어족이다. 이는 옛 봉건 시대의 집안 구성원이 자유로운 사람과 노예 신분으로 구분됐던 것과 맞닿아 있다. 자유로운 사람이야말로 가장 친밀하고 사랑받는 혈육이자 한 식구를 뜻하는 말이니 그럴 만하다.

12세기 유럽에서는 왕실에 고용되지 않은 용병(傭兵)들을 자유계약자라는 의미의 프리랜서(free lancer)로 불렀다. 랜스(lance)는 ‘창’이고 랜서(lancer)는 ‘창을 쓰는 병사’다. 1820년 월터 스콧이 소설 《아이반호(Ivanhoe)》에서 이 말을 쓴 뒤 현대 영어에 편입됐다고 한다. 경영학자 톰 피터스가 말한 프리에이전트(free agent)도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창조적 개인을 말한다.

‘프리’는 무료·공짜라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1840년대 미국 술집과 레스토랑은 손님을 끌기 위해 술 마시는 사람에게 공짜 점심을 제공했다. 그 점심이 주로 짠 스낵류여서 다들 목이 말라 술을 더 찾았다. 술집으로선 공짜 점심을 주는 게 더 남는 장사였지만, 소비자로선 ‘결국 비싸게 먹히는 공짜’였다. 여기서 ‘공짜 점심은 없다(There’s no free lunch)’는 격언이 나왔다. 워싱턴DC 한국전참전기념공원에 새겨진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는 문구도 같은 맥락이다.

‘free’가 명사 뒤에 올 때는 ‘~가 없는’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무설탕(sugar free), 무지방(fat free), 면세(duty free) 등이 그렇다. 이를 모르고 금연구역(smoke free)에서 ‘자유롭게 담배 피울 수 있는 곳’이라며 마구 연기를 내뿜다 망신을 당하는 촌극이 벌어진다.

‘free’라는 용어는 스포츠 분야에서도 널리 활용된다. 계약이 해지되거나 구단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선수, 공격수가 수비수의 방어를 받지 않는 것, 요트가 순풍을 받아 항해하는 것 등으로 폭넓게 쓰인다.

엊그제 한·미 정상회담에서 ‘free’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공동성명 발표가 7시간이나 늦어졌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집 때문에 당초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free and fair trade)’이라는 합의문에서 ‘free’를 삭제했다는 것이다. 경제 문제에서만큼은 안보동맹이나 자유무역보다 ‘미국 우선’이라는 보호무역을 앞세우는 게 트럼프식 외교라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다. ‘자유’는 때로 우방(友邦)의 울타리 밖에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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