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성폭력상담소 후원하면 감형?

입력 2017-08-03 18:17  

구은서 지식사회부 기자 koo@hankyung.com


[ 구은서 기자 ] 서울동부지법은 지하철에서 한 여성의 치마 속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공무원 손모씨(35)에게 2015년 선고유예라는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초범인데다 성폭력상담소에 정기후원금을 납부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법원은 양형 사유를 밝혔다. 하지만 성폭력상담소 측은 후원금 납부 기간은 1심 재판 시작 시점부터 2심 재판 시작 시점까지 딱 5개월이라며 감형 의도로 후원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다.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 곳에서만 비슷한 일이 한 달에 두세 건씩 발생하고 있다. 후원 몇 개월 뒤 ‘재판 끝났다’며 후원금을 돌려달라는 ‘꼼수’를 쓰는 일도 심심찮다. 사건을 의뢰받은 담당 변호사가 전화해 후원할 테니 증명서를 당장 떼달라는 요구도 한다는 게 상담소 측 설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오는 9일까지 이메일 등을 통해 사례를 모으고 있다. 후원금을 내겠다는 연락이 와도 해당 기관들은 몸부터 사린다. 서울의 한 상담사는 후원 문의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혹시 성범죄 가해자로 재판 중이신가요”라고 먼저 물어본다고 전했다. ‘그렇다’는 답이 돌아오면 후원을 거절하거나 재판이 끝난 뒤 후원해 달라고 권한다는 설명이다.

양형 과정에서 ‘꼼수 후원’을 걸러내고 차단하지 못하면 선의의 후원까지 희화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재산에 따라 피고인의 처벌이 달라지는 것은 사법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적 행위다. 김현아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는 “감형용 꼼수는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사회정의에도 반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재판부의 각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가해자의 일방적인 후원이 감형으로 이어질 경우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기는 어렵다. 후원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사죄나 반성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관련 사례들을 정리해 이달 안에 대법원에 개선을 요구할 예정이다. 피해자 인격에 치명적 상처를 입히는 범죄인 성폭력범의 단죄는 인권 문제이기도 하다. 법원의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하다.

구은서 지식사회부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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