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긱 노동 시대'의 정규직화 논쟁

입력 2017-08-28 18:37  

음식배달 등 확산되는 온라인 기반 '긱경제'
디지털기술 발달로 고용형태도 근본적 변혁
새로운 플랫폼 노동에 맞는 고용대책 마련을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올여름은 무더위로 인해 집에서 불 피우는 것을 엄두도 못 낸 탓에 배달음식 덕을 크게 봤다. 치킨이나 중국 음식을 시켜 먹는 수준에서 나아가 스마트폰을 이용해 소위 ‘맛집’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필자도 최근 글로벌 경제에서 ‘긱이코노미(Gig Economy)’라고 부르는 세계에 진입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좀 다른 의미를 부여해 ‘란런(懶人)경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으른 자(懶人)’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상품 및 서비스산업이 활성화되는 현상에 동참한 것이다. 아직은 학계에서도 의미가 완전히 정의되지 않고 형성되는 단계여서 중복되고 겹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O2O(온·오프라인 연계)로 온라인에서 주문하고 오프라인에서 받는 서비스산업이다.

필자가 발품을 팔지 않고 맛집 음식을 집에서 먹게 된 것은 누군가가 나 대신 일을 했기 때문이다. 마치 1920년대 재즈 공연장에서 ‘긱(gig)’이라는 임시 연주자를 필요에 따라 섭외해 공연한 것처럼 말이다. 상설 공연은 어려웠지만 긱을 동원하면 훌륭한 연주회가 가능했다.

이젠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해 연주자뿐 아니라 다양한 노동력을 불러들여 상상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맛집 배달 서비스 이외에도 택배 접수, 티켓 구매, 전기·수도요금 대신 납부, 심부름, 가사도우미 등 일상생활과 관련한 모든 분야로 긱경제는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으면 외환위기 이후 거의 20년간 ‘기간제보호법’과 ‘파견근로자보호법’ 개정안을 두고 정권이 뒤바뀔 정도로 정치권과 노사가 뜨겁게 대립한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현재 2년을 근무하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 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것은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미봉책이라는 주장과, 현장에서는 정규직 전환보다 더 오래 일하게 하는 것을 원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한 기간제법 개정은 박근혜 정부 내내 국회에서 한발짝도 못 나갔다. 오프라인상에서 파견근무를 32개 업무로 제한하는 것을 확대해 용접, 금형 같은 뿌리산업의 인력난을 해소해 달라는 의견과 파견업종을 확대하면 기존 근로자들의 근로 조건을 해칠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대립한 파견법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스마트폰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고용 형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데,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논의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100대 과제 어디에도 이런 고민의 흔적은 없다. 긱노동자는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하는 전통적인 노동의 형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노동 계약을 하게 된다. 온라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력을 마치 시장에서 팔고 사는 상품처럼 취급하는 ‘플랫폼 노동’을 하는 것이다.

긱노동은 불완전고용이지만 유연해 더 많은 사람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고, 스스로 근무시간을 선택하고 유동적으로 일자리를 바꿀 수 있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용이하다. 반면 일자리가 비정규직, 임시직인 탓에 고용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추경을 편성하는 등 일자리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놓고 있지만 고용 현실을 직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7월 고용동향만 봐도 3년 연속 증가세를 유지하던 20대와 40대 취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만8000명과 4만8000명 줄어든 반면 50대와 60대 이상에선 최근 5년간 매달 10만~20만 명 가까이 꾸준히 취업자 수가 늘고 있다. 아마도 임시직·일시직 위주로 인건비가 싼 고령층의 고용이 늘어난 탓일 것이다. 이처럼 인구구조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고용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긱노동의 고용 규모에 대한 파악은 손도 못 대고 있다.

물론 긱노동의 공식 통계 작성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긱노동자들의 대부분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되지 않아 법정근로시간, 고용보험, 최저임금 등의 규정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에 있다. 긱노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억제하기보다는 플랫폼 노동의 등장이 고용·삶의 질 제고 등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insill723@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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