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데스크 시각] 락앤락 매각의 명과 암

입력 2017-09-03 20:17   수정 2018-05-31 16:47

김태완 중소기업부장 twkim@hankyung.com


그에겐 장성한 아들이 셋이나 있다. 39년 동안 키워온,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기업도 있다. 아들 둘은 그 기업에서 경영수업을 했다. 그런데 그는 회사를 팔았다.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면 오히려 짐이 된다” “회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창업자의 색깔을 배제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얼마 전 락앤락을 글로벌 사모펀드인 어피너티에 매각한 김준일 회장 얘기다.

락앤락은 우리 중소기업계에선 상징적인 기업 중 하나다. 1978년 설립돼 국내 밀폐용기 시장을 석권했다. 2003년 중국에 진출해 한때 ‘중국 3대 수출기업’으로 꼽힐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베트남에서도 ‘국민기업’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중견 제조업체로는 드물게 110개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자식보다는 기업을 위한 결단

“좋은 기업을 가장 빨리 망하게 하는 방법은 능력과 뜻이 없는 자녀에게 억지로 물려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우리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겐 아직 이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 특히 창업자는 자신이 세운 기업에 애착이 강하다. 그래서 자신의 분신인 자녀에게 기업을 주려고 한다.

지난해 중소기업중앙회가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가업승계 계획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한 기업 CEO의 73.2%(366개사)가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겠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500명 중 승계할 자녀가 있는 기업 CEO는 74.2%(371명)였다. 자녀가 있는 CEO 대부분이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고 답한 것이다. 반면 자녀가 없는 CEO들은 대부분 ‘승계 방안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전문경영인이나 직원에게 넘겨주거나 회사를 제3자에게 매각할 생각이 있다고 답한 CEO는 거의 없었다. 김 회장의 결단은 그래서 이례적이고 신선하다. 다행히 락앤락 직원들도 김 회장의 결단을 수긍하고 이해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러나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락앤락을 인수한 어피너티는 홍콩계 사모펀드다. 이 펀드는 “중국과 베트남 주방용품 시장의 성장세가 여전히 높다고 판단해 락앤락을 인수했다”고 한다. 인수합병(M&A)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락앤락은 중국 기업에 매력적인 매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락앤락이 중국에서 쌓아온 브랜드 가치를 중국 기업이 활용하면 시너지효과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내수시장 1위 수출 기업인 락앤락이 최종적으로 중국 기업에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엔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경영승계, 정부가 도와야

락앤락처럼 가업승계를 고민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매각을 추진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 M&A 전문가는 “처음에는 매각 가격이 떨어질까봐 말하지 않지만 나중에 보면 후계자가 없어 회사를 어쩔 수 없이 파는 기업주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가 경제에서 기업 지속과 발전은 중요한 문제다. 기업이 유지돼야 고용을 늘리고 기술과 노하우를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가업승계를 지원해주고, 물려줄 후계자가 없는 경우 잘 매각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국가의 정책 과제가 된다.

전통적으로 가업승계를 중요시하는 독일에선 정부가 가업승계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캠페인을 추진하고, 가업승계가 안돼 매각하는 기업과 인수하려는 기업에 정보를 제공하고 금융 지원과 컨설팅까지 해주는 NEXXT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우리 정부도 이런 움직임을 참고해야 할 때가 왔다.

김태완 중소기업부장 tw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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