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서 30년 일한 한국인이 바라본 북핵…안준호 전 IAEA 사찰관 “한국은 ‘핵의 볼모’”

입력 2017-09-06 11:49   수정 2017-09-06 12:08

북핵 개발 역사엔 냉엄한 핵질서 녹아 있어
북한 핵실험 실제 규모, IAEA에서도 파악 못해
일본, IAEA 분담금 Top 5...“한 달이면 핵무기 제작”
한국 핵잠수함 추진, NPT 위반 비판 제기 우려




“한국 국민들은 ‘핵의 볼모’로 잡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사방이 핵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미국과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핵 보유국(Nuclear Weapons State)로 인정받은 나라들입니다. 북한은 핵탄두 소형화를 눈앞에 두고 있고, 핵실험도 여섯 번이나 했죠.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한 달 만에 핵무기 수십 개를 만들 수 있는 자체 기술을 갖고 있고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30년동안 근무한 안준호 전 IAEA 사찰관(사진)은 지난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안 전 사찰관은 고려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의 전신인 한국과학원에 잠시 몸 담았다가 1980년 IAEA에 입사한 후 2010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IAEA 본부에서 선임 핵 사찰관, 기술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한국 원자력통제기술원을 비롯한 여러 연구기관 및 대학에서 강의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IAEA에서 핵 사찰관으로 정년퇴직한 사례는 현재까지 그가 유일하다.

안 전 사찰관은 “한국에선 아직까지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핵 구상과 북한의 핵 기술 수준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런 안이함으로 얻은 결과가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저는 기술자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에 대해 거대 담론을 펼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 편을 들어주리란 희망을 품으면 안 됩니다. IAEA에서 30년을 보내면서 얻은 교훈은 국가는 절대 믿을 수 있는 집단이 아니란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그에게선 “북핵 개발사를 보면 핵질서가 얼마나 냉엄한지 실감할 수 있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안 전 사찰관은 “북한이 처음부터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건 아니었다”며 “자국의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고자 원자력발전소 개발을 원했고, 그 과정에서 옛 소련으로부터 원자로를 수입하려 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1975년, 북한은 1985년 NPT에 가입했죠? 남북한 모두 NPT 가입 목적은 원전 개발 기술 확보였습니다. 한국은 미국에서, 북한은 소련에서 원자로 수입 및 기술 원조를 받고자 했죠. 원래 NPT는 핵 보유국들이 비(非) 핵 보유국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제잖아요. 그래서 한국과 북한 모두 초반에 기술 확보에 무척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아예 NPT에 가입을 안 해 버렸죠. 핵을 갖지 않은 나라 입장에서 NPT는 철저한 불평등조약이니까요.”

하지만 북한의 원자로 건설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자금 부족 문제도 있었지만 옛 소련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체제에서 친(親) 서방 노선으로 선회하고, 이후 소비에트가 붕괴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옛 소련 및 파키스탄 출신의 핵 과학자들을 적극 영입했다. 안 전 사찰관은 “1993년 3월 1차 북핵 위기가 터지기 전만 해도 분위기가 꽤 좋은 편이었어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체결됐고, 북한은 그 때만 해도 IAEA에 긍정적으로 협력하는 태도였어요. 그런데 IAEA 핵 사찰 과정에서 우리 쪽 조사와 북한 측 제출 자료 내용이 달랐어요. 플루토늄 보유량이 90g 차이가 났죠. 이게 시작이었습니다.”

북한은 결국 2003년 NPT에서 공식 탈퇴하고, 2009년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마저 무효화 선언을 했다. 안 전 사찰관은 “IAEA엔 사찰권만 있을 뿐 자체 수사권이나 처벌권은 없다”며 “NPT 미가입국에서 다른 나라로부터 핵 관련 물질 또는 시설을 수입할 경우 해당국이 IAEA 및 수출국과 3자 협정을 맺어 IAEA의 사찰을 받도록 돼 있는데 전체 사찰은 불가능하고, 수입 품목에 대해서만 사찰 권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상 북핵 문제는 IAEA의 손에서 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게 현실”이라며 “북한의 핵 시설과 핵실험 규모는 IAEA에서조차 제대로 파악된 자료가 없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북한 입장에선 어쨌든 자체 주권을 주장하는 상황이고, 모든 핵 관련 조약을 파기해 버린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IAEA는 북한에 접근할 권한이 없어요. IAEA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는 사찰 후 문제 발견시 유엔 안보리에 보고하는 것이거든요. 지진파로 핵실험 규모를 추정한다고 해도 이 역시 계산법이 여러 가지라서 정확한 파악은 어렵습니다. 지형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각국의 지진파 측정 결과도 차이가 나고요.”

안 전 사찰관은 “IAEA도 결국 강대국들의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분담금 문제를 꺼냈다. 현재 IAEA 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는 나라는 미국이며 독일과 일본, 러시아 등이 톱5에 든다. 한국의 경우 IAEA 분담금 비율이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그는 “국제기구에선 분담금을 많이 내는 국가들이 의사 결정 때 큰 힘을 발휘한다”며 “한국으로선 사실상 IAEA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안 전 사찰관은 이 내용을 설명하면서 일본 사례를 들었다. 그는 “일본은 이미 1960~1970년대부터 자체 핵연료 재처리 기술 및 농축 기술을 갖고 있다”며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안에 핵무기 수십 개를 만들 수 있다고 IAEA는 추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아마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 전범국이 아니었다면 벌써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IAEA에서 막대한 분담금을 내며 국제 핵 무대에서 자체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IAEA 사찰관도 사찰국 입국 전 외교관의 아그레망(주재국 승인)과 비슷한 절차가 있다”고 안 전 사찰관은 말했다. 우선 북핵 사찰의 경우 한국인은 ‘당연히’ 못 들어간다. 일본의 경우 NPT 미가입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 출신 IAEA 사찰관은 입국을 불허한다. 이란을 비롯한 중동 국가들의 경우 서방 출신 사찰관들을 꺼린다. “한국인 사찰관들이 중동에서 많이 활동했던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2012년 이란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동료 서옥석 씨가 그런 사례였어요. 안타까운 일이었죠. IAEA에서 훌륭한 한국 인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봐요.”

그는 최근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노선에 대해선 “난 국제정치 이론가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선 얘기할 게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현 정부에서 추진 중인 핵추진 잠수함의 도입 또는 자체 건조에 대해 “이미 국제 핵 전문가들이 이에 대해 NPT와 상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린 이제 정말 큰 딜레마에 직면했습니다. 평화적 해결은 너무 늦었고, 그렇다고 군사적 옵션을 쓰기도 애매하죠. 해법을 찾는 건 정치인들과 정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핵에 대해 좀 더 진지하고 현실적으로 직시해 주길 바랍니다. 국제 사회의 핵 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관성과 예측성, 투명성 유지입니다. 북한은 이를 다 어겼기 때문에 북핵 문제가 세계적인 골칫거리가 된 것이죠. 한국은 지금까지 한 번도 NPT나 한반도비핵화협정에 대해 무효화나 재검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입장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자꾸 말이 바뀔 테마가 아닙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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