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국가신용도, 채무상환 능력 못잖게 구조개혁 의지 중요

입력 2017-10-10 18:19   수정 2017-10-11 09:07

국가신용등급 결정짓는 변수들

개혁의지 부족했던 사우디·영국은 신용등급 강등
뼈깎는 개혁에 매진한 프랑스·포르투갈은 하락 모면
한국, 반도체 호황 착시 탈피해 진정한 구조조정 나설 때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요 20개국(G20) 및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연차 총회 참석차 11일 미국을 방문하면서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의 임원들과 연쇄 면담을 한다. 김 부총리는 지난달 19~21일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도 무디스와 S&P 본사를 찾았다. 당국이 현재 상황을 북핵 리스크로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이 있는 위기 국면으로 본다는 증거다. 무디스는 “한반도의 분쟁 상태가 장기화하면 한국의 신용등급이 대폭 낮아질지 모른다”고 경고까지 한 마당이다. 다시 신용등급 강등의 공포가 경제 전반을 휩쓸고 있다.

국가 신용등급의 변동은 글로벌 경제에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 15년 동안 대부분 국가가 신용등급의 상승이나 강등을 경험했다. 그리스는 2009년 a1 등급에서 2012년 최저등급인 c까지 15단계나 떨어졌다. 이탈리아 스페인 아일랜드 포르투갈도 각각 10단계 이상 하락했다. 미국 또한 S&P에 의해 2011년 신용등급이 한 등급 낮춰진 뒤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정작 이 기간 신용등급이 가장 높이 뛴 국가는 한국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용등급이 급속히 떨어졌다가 V자로 회복했다. 2000년 이후 매년 계속 올라가 모두 12단계를 껑충 뛰었다. 이처럼 급속히 올라간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그다음 많이 올라간 나라는 슬로바키아로 5단계 상승했다가 2013년 다시 떨어졌다. 그만큼 한국이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국가 재정을 건전화하는 데 피땀 어린 노력을 마다하지 않은 결과다. 하지만 다시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북핵으로 포장돼 있지만 개혁 부족이 만들어내는 위기다.

정성적 판단도 평가에 들어가

국가 신용등급은 한 국가의 정부가 채무를 정해진 기간 내에 완전히 상환할 능력과 의지를 평가하는 것이다. 한 국가의 채무 불이행 가능성을 측정하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국가의 모든 채권 발행기관이 받을 수 있는 신용등급의 상한선이 되는 지표이기도 하다. 높은 신용등급은 국채 금리 등을 끌어내려 차입 비용을 줄이고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통해 장기적인 투자를 유도한다. 경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급격한 자본 유출도 줄인다.

신용등급은 거시 경제지표와 정치 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평가한다. 물론 정량적 판단과 함께 정성적 판단도 중요한 요소다. S&P는 성장률 전망이나 경제 구조의 다양성 및 변동성을 집중 평가하고 무디스는 경제적 역량뿐 아니라 정부의 투명성과 효율성 등 제도적 역량, 정부의 금융 역량(재원조달능력)과 위험 민감성 등을 주로 평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피치는 각종 경제 변수와 함께 금융시장의 성숙도와 국제 통화 수준, 국가 부도 후 경과 연수 등을 평가에 반영한다.

美 신용등급 하락 '의지 부족' 탓

무엇보다 최근 주목받는 건 S&P의 움직임이었다. S&P는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기축통화국의 신용등급을 내린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당시 S&P는 등급 하향 이유로 미국의 막대한 예산 적자와 부채 부담 등을 꼽았다. 하지만 S&P는 ‘부채의 상환능력(ability to repay)’보다 ‘상환 의지(willingness to repay) 부족’이라는 위험 요인을 가장 중요한 근거로 꼽았다.

경제 성장 전망이나 국가채무비율 등 재정적 요인을 근거로 국가 채무상환 능력을 평가한 전통적 신용등급 평가방식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다른 평가 기업들도 이런 추세를 따르고 있다. 국가의 경제적인 지표도 중요하지만 개혁하려는 의지와 개혁 과정 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올 들어서도 항상 높은 신용등급을 차지하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신용등급을 강등당했다. 중국 영국 홍콩 등도 잇따라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 하락으로 재정 적자가 커졌으며 영국은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라는 그림자가 등급을 떨어뜨렸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그림자 금융과 경제 버블 우려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정작 이들 국가는 시장원리에 맞춘 경제 개혁을 할 의지가 부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가를 개혁하고 기업을 혁신해 차세대 성장엔진을 키우고 미래를 꾸려가는 도전 의지가 약했다는 것이다. 일본도 양적완화 정책이 국가 부채를 늘려 신용등급 하락 우려를 계속 낳고 있다.

반면 신용등급 강등 우려가 컸던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신임 대통령의 노동개혁 의지 등으로 오히려 신용등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노동개혁에 성공하고 연금개혁까지 손을 대고 있는 브라질도 신용등급이 오를 태세다. IMF 구제금융을 졸업한 포르투갈은 공무원 봉급 삭감, 금융개혁 등을 통한 뼈를 깎는 개혁으로 신용등급을 올렸다.

북핵위험 변수지만 구조개혁 시급

무디스가 지목하는 한국의 신용등급 하락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구조개혁의 후퇴와 정부 재정 악화, 북핵 위험 고도화 등이다. 물론 당장은 북핵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무디스가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한반도에서 군사 분쟁이 벌어지면 한국 경제와 정부의 기능, 재정, 지급 시스템이 훼손될 것”이라며 “신용도에 미칠 충격은 갈등의 기간과 강도에 좌우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런 충격이 “경제에 상당한 손해를 끼치겠지만 한국 정부와 재정, 제도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키진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디스가 오히려 걱정하는 것은 한국의 개혁 의지 부족이다. 지난 7월 내놓은 보고서에선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끌어내릴 수 있는 첫 번째 요인은 구조개혁 후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생산성이 낮고 신규 채용과 퇴출이 어려워 생산 요소의 핵심인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무디스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지금 반도체 붐으로 한국 경제가 잘나간다는 착시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반도체 기업을 제외한 상장 기업들의 매출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국내 상장사 655여 곳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상반기 대비 18% 이상 늘어났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빼면 오히려 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에서는 1990년대 반도체 호황으로 착시가 생겨 결국 IMF 금융위기를 만들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 전문가는 “지금 한국 경제는 기업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밀어붙여 고비용 구조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며 “정치 리스크보다 혁신에 대한 의지 부족이 더욱 큰 리스크”라고 말했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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