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소설이든 영화든 '친숙한 놀라움' 있어야 흥한다

입력 2017-10-12 19:23   수정 2017-10-13 07:08

히트 메이커스
데릭 톰슨 지음 / 이은주 옮김 / 21세기북스 / 508쪽 / 2만2000원

인상파 작품부터 미드까지 각 분야 히트작 비결 소개
'받아들일 만한 즐거움'이 핵심

다매체시대 '바이럴마케팅' 한계
거대한 전파자·네트워크 필요



[ 김희경 기자 ] 국내외 마케터 사이에선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 연구가 한창이다. 이는 전혀 성공을 예상하지 못한 작품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잘 활용하면 고객 입소문을 타고 바이러스처럼 확산될 수 있다는 마케팅 기법을 뜻한다.

이때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 있다. 2011년 출간된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다. 영국 출신의 평범한 주부였던 E L 제임스의 첫 소설로 한 여대생과 젊은 남자 사업가의 농도 짙은 관계를 다루고 있다. 외설적이란 비판까지 받은 이 작품이 세계적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신문, 방송에 한 줄도 소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판매부수는 1억2500만 부를 훌쩍 넘어섰다. 《해리포터》 《다빈치 코드》 등을 누르고 최단기간 최다 판매 기록도 얻었다. 이를 두고 마케터들은 여성 개개인이 이뤄낸 막강한 입소문의 힘이라고 분석한다.

《히트 메이커스》의 저자이자 미국 시사잡지 ‘애틀랜틱’의 부편집장인 데릭 톰슨의 생각은 이와 전혀 다르다. 톰슨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바이럴은 없다”고 주장한다. 특정 작품이나 제품이 평균 이상 공유되는 수준을 넘어 히트작이 되는 데는 단순히 우연과 입소문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엔 거대한 전파자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도 마찬가지였다. 호주의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을 미국 메이저 출판사 랜덤하우스가 재출간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40개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독자 서평 사이트 ‘굿리즈’에서 막강한 파워를 지닌 특정 독자 몇 명이 올린 서평도 큰 힘을 발휘했다. 이들은 거대 전파자가 돼 유명 인사가 트위터 등을 통해 콘텐츠를 또 다른 유명인사와 공유하는 것과 똑같은 역할을 했다.

톰슨의 신간 《히트 메이커스》엔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부터 브람스 자장가,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사진)까지 다양한 분야의 메가 히트작에 숨겨진 성공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유명해진 것 같아 보이는 히트작이 사실은 일정한 규칙에 따른 (마케팅의) ‘과학적’ 결과물”이라며 “뭔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 아이디어 전파 수단인 소셜네트워크 등이 복잡하게 작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히트작의 가장 큰 특징은 ‘마야(MAYA: Most Advanced Yet Acceptable)’ 원칙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마야는 진보적이지만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 안에 있는 즐거움을 주는 ‘친숙한 놀라움’을 의미한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채널 ESPN도 마야 원칙에 따라 세계 스포츠 미디어의 절대 강자가 됐다. 1990년대 말 시청률 부진에 시달리던 ESPN은 대학 스쿼시부터 인도 크리켓까지 다양한 스포츠 시청자를 다 만족시키려던 기존 방침을 폐기했다. 그리고 ‘스포츠센터’란 새 프로그램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대다수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나 인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다. 대신 매번 조금씩 다른 양념을 쳐 색다른 음식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스포츠 버전의 스테이크 하우스’를 목표로 삼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ESPN의 시청률은 급등했고 이후로도 줄곧 미국인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거대 전파자’가 등장하면 더 막강한 파급력이 생긴다. 야후 연구진이 트위터 메시지 수백만 개의 전파 경로를 조사했지만 가장 인기있는 공유 메시지조차 바이러스처럼 퍼진 사례는 없었다. 톰슨은 “1 대 1로 접촉해 이뤄지는 입소문이 100만 번이나 발생해 히트작이 탄생할 확률은 매우 낮다”며 “특정 전파자 1인이 100만 명과 접촉하는 순간이 3~4번 정도 반복된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마네, 모네, 세잔, 드가, 르누아르 등과 같은 유명 인상파 화가 뒤에도 그림자처럼 이들을 지원한 또 다른 화가 카유보트가 있었다. 카유보트 또한 실력있는 인상파 화가였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진 않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보다 가난한 동료 화가들을 도우려 했다. 그리고 일부러 그들의 가장 인기 없는 작품만 골라 사들인 ‘최후의 구매자’ 역할을 했다. 카유보트를 비롯한 거대 전파자들이 이 작품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오늘날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은 대중의 큰 사랑을 받게 됐다.

톰슨은 “하나의 돌로만 돌다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돌이 모여 돌다리를 이룬다”며 “히트작도 개인 취향에 수많은 요소가 결합돼 탄생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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