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주택후분양제, 잃는 게 더 많다

입력 2017-10-24 17:21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정부가 주택 후(後)분양제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토교통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주택도시공사가 짓는 공공분양 주택부터 후분양제를 적용하고, 이를 민간 주택으로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선(先)분양제가 주택을 착공하기 전에 미리 분양하는 것인 데 비해, 후분양제는 건물을 80% 정도 지어 놓고 분양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후분양제 장점으로 주택 품질 확보와 투기 억제 등을 꼽는다. 소비자가 완공 단계 제품(주택)을 직접 확인하기 때문에 부실 시공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 당첨 후 입주 때까지 걸리는 기간이 짧아 분양권 전매(轉賣)로 인한 투기도 막아 서민 주거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실련 등 일부 시민단체는 “지어지지도 않은 집의 견본주택만 보고 거액을 들여 구매하는 선분양제는 후진적인 한국 주택시장의 한 단면”이라며 “건설사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시장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후분양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분양은 선진국에서도 대세

선분양제가 부실 시공과 투기의 주범(主犯)이며, 건설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일까. 많은 사람이 선분양제가 한국에만 있는 제도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주요 선진국 기업들은 선분양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소규모 단독주택 단지 건설은 후분양이 대부분이지만, 대규모 주거단지와 주상복합단지 개발 등 거대 프로젝트는 선분양이 대세다. 선분양은 사업 리스크를 줄이면서도 막대한 개발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는 주택분양 기법이기 때문이다.

후분양제가 부실 시공을 줄이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겠지만, 후분양의 투기 억제 효과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시 판교·분당 등 집값 급등 우려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에선 입주 때까지 분양권 전매가 애당초 금지돼 있다. 전매에 의한 투기 가능성은 선분양과 후분양 제도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불법 전매를 제대로 단속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현행 주택법상 건설사는 선분양과 후분양 모두 선택 가능하다. 후분양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분명하다. 분양가 상승, 사업성 악화, 주택 공급 감소 등으로 소비자는 물론 공급자(건설사)에도 득보다 실이 더 많아서다. 노무현 정부가 후분양 의무제를 추진했다가 무산된 것도 이런 부작용 때문이었다.

분양가 상승·공급 급감 우려

후분양제에서는 건설사가 건물 완공 때까지 공사비를 자체 조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돼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후분양제 주택은 분양가 제한을 받지 않는다. 건설사는 ‘새 아파트’란 장점을 내세워 인기 지역의 경우 분양가를 주변 시세와 비슷하거나 더 높게 책정할 가능성도 있다.

대형 건설사에 비해 신용도가 떨어지는 중소 건설사(주택 공급 76.3% 담당, 작년 기준)의 사업이 어려워져 주택 공급물량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분석도 있다. 공급 부족은 집값 상승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민간 아파트에 후분양제가 의무화되면 건설사가 추가로 조달해야 할 자금은 연간 40조원을 넘는다. 분양가는 평균 7% 정도 상승하고, 연간 10만 가구 이상 주택 공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정부가 시장 상황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후분양제를 밀어붙인다면 보호하려는 서민 주거 안정이 오히려 위협받을 수 있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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