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버려진 미군 옷 팔던 평화시장… 관광객 몰리는 글로벌 패션타운으로 '우뚝'

입력 2017-10-29 18:11  

50년 패션 중심지, 동대문


[ 이수빈 기자 ] 1950년대 동대문 시장은 지금의 광장시장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서울 예지동에 있던 시장이 1960년대 광장시장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종로5가부터 신당동 일대 노점과 상가를 동대문 시장이라고 부르게 됐다.

동대문 시장을 대표하는 평화시장도 1960년대 초 생겼다. 6·25전쟁 때 북한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청계천변 판자촌에서 옷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버려진 미군 옷을 수선해 재판매하던 게 의류시장의 모태다. 이 판자촌에 불이 난 뒤 그 자리에 상가 건물을 올린 것이 지금의 평화시장이다.

1970년대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크고 작은 노점상과 점포가 들어섰다. 1976년 완공된 청계천 고가도로 주변에도 양복, 체육복, 전자부품 상가가 둥지를 틀었다. 상권이 커지자 평화시장 상인들은 직접 만들던 의류를 주문제작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의류 원자재 시장이 들어섰고, 봉제공장도 늘어났다. 의류 기획과 제조, 판매의 분업화가 시작된 셈이다.

동대문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성장하며 국내 최대 도·소매 의류시장이 됐다. 1980년대 평화시장 근처에 광장, 동평화, 제일 등 의류상가가 속속 생겨났다. 이들 상가는 여성의류, 남성의류, 액세서리, 신발, 가방 등의 품목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면서 분화했다. 캐주얼 도매상가 ‘아트프라자’의 등장은 동대문식 패스트 패션의 시작을 알렸다. 유명 브랜드 제품을 사흘이면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 1990년대 말 광희동에 밀리오레, 두산타워 등 현대식 패션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중심 상권이 청계천에서 광희동 쪽으로 옮겨갔다. 이들 쇼핑몰은 새벽 5시까지 영업하는 등 파격적인 운영으로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초 광희동에 헬로에이피엠, 굿모닝시티 등 쇼핑몰이 더 생기면서 패션타운을 형성했다. 소매 옷가게만 3만 곳 이상으로 늘었다. 일본인 관광객이 동대문을 방문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2010년대 들어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몰리면서 동대문 패션타운은 세계적인 쇼핑 관광지가 됐다. 최근 유커 감소로 소매시장은 전보다 위축됐지만 매일 생겨나는 온라인 패션몰이 도매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동대문 패션특구 협의회는 동대문에서 하루에 팔리는 도·소매 의류 거래액이 약 500억원, 연간 18조원 이상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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